Hegel by Charles Taylor




1부 사변 이성의 요청

 1장 새 시대의 목표


  1770년에 태어난 헤겔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살았던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헤겔은 질풍노도Strum und Drang 세대에 태어나 낭만주의Romantik 세대까지 걸쳐 있는 철학자이며, 프랑스 혁명을 경험하였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또한 17-18세기의 급진적 계몽 운동[각주:1]이 일어난 시기기도 하다. 이런 일련의 분위기 속에서 지식인들이 제기했던 중심 문제는 '인간 주체의 본성 문제'와 '인간 주체가 세계와 맺는 관계'와 관련된 것이었다. 고대의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적 주체관은 "인간이 우주적 질서와 감응할 때, (...) 즉 이성에 순응할 때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머문다"(20)고 생각한다. 이 관점에서는 주체가 순응하거나 감응해야 할 '우주적 질서'가 없다면 주체의 자기 현존은 의미가 없어진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리고 내가 거하는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참고하지 않고서 나 자신을 위해 규정할 수 있는 동일성 개념이 여기에는 없다. 이러한 견지에서 나는 본질적으로 질서의 상 아니면 환상의 상이다."(21) 그러나 17세기 혁명을 거치면서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로 대변되는 주체에 대한 새로운 사유 방식, '근대적인 자아 개념'이 등장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의심할 만한) 세계와는 상관없이 (의심하고 있는) 주체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고대의 주체관은 "세상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인간을 심히 유약하게 만들며, 발견하고 싶은 형식들, 완전하고 평안하다고 느끼는 형식들을 아무렇게나 사물들에 투사하는 방종을 범"(17)할 뿐이다. 고대의 사유 방식이 주관적 가치인 목적인에 집중했다면, 근대적 사유는 관찰 불가능한 가치들은 과학의 영역에서 제거하고자 하였으며, 결국 사물의 외적인 인과관계를 묻는 작용인에 집중한다. 이러한 근대적인 사고방식은 사물을 통제하려는 욕망의 발현이다. 이러한 사유 방식의 변화에는 종교개혁의 영향도 있다. 성스러운 또는 종교적인 의식은 "어떤 선택된 장소나 시간, 그리고 행동 속에 신적인 것이 임재한다는 것을 의미"(25)하였는데, 프로테스탄티즘과 칼뱅주의는 이를 우상으로 분류하고 제거하고자 하였다. 이런 움직임은 '신자는 신에게만 의존해야 한다'는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탈신성화를 촉진시켰다. 이로써 의미와 목적은 주관적 범주이므로, 이 범주들을 고려하지 않는 새로운 근대적 객체성이 형성되었다. 이 개념은 "목적인에 대한 의존을 거부하며, 작용인에만 의존한다는 의미에서 기계적이다."(27) 또한 "복잡한 사물들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형태적인 혹은 전체적인 속성들에 의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 요소들 사이의 작용인적인 관계에 의해서만 설명"(27)하기 때문에 원자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고 방식은 인간에게도 적용되었다. 인간은 인식의 주체이면서 또한 자연 안의 객체이기 때문이다. 자기 규정적 주체성과 자연의 일부로서의 객체성, 이 두 성질은 서로 부분적으로 결합하고 또 부분적으로는 대립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이 두 개념의 조화를 이뤄내는 것이 독일에서 헤겔 세대의 중심 주제였다. 프랑스가 아닌 독일에서 이 문제를 더 고심하게 된 까닭은, 독일의 계몽이 가톨릭과의 대립을 토대로 하고 있는 프랑스의 계몽과는 다른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독일은 작은 소국으로 분열되어 있었으며, 후진적인 경제 상황 등을 배경으로 하는 계몽은 종교적 배경(경건주의)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이런 진행 과정 속에서 중요한 두 가지 흐름이 있는데, 하나는 1770년대 질풍노도 시기의 사상가 헤르더이다. 그는 계몽의 인간학에 반대하며 대안적 인간학을 제시하며 '표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표현의 인간학은 표현으로서의 인간의 행위 혹은 표현으로서의 삶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삶을 목적의 실현으로 보는 점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계승하지만, 자아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근대적이다. 이것은 고대로의, 즉 아리스토텔레스로의 복귀가 아니다. 내적인 힘이 자기 자신을 외적인 실재에 부과하려는 고대의 목표와는 달리, 표현주의적인 견해는 주변 세계가 부과한 힘들에 대항하여 자기 자신의 형태를 유지하고 실현하려는 내적 힘에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각주:2]. 표현주의는 의미와 존재 사이의 계몽적 이분법과 근대 과학이 자연[본성]을 객체화하는 것에 반대한다. 대신 그것은 자기 규정하는 주체성을 체현하며 그 자신으로부터 전개된 자기 자신의 실현을 꿈꾼다. 이런 과정에서 '표현적 예술관'이 함께 발전할 수 있었다. 예술은 그 자체가 지극히 표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예술이 종교와 유사한 기능을 담당하고 종교의 역할을 대체하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표현주의적 인간학은 인간의 삶에 대한 기계론적, 원자론적, 공리주의적 해명에 대한 반응이다.(50) 계몽은 인간 본성을 포함한 자연을 객체화된 사실들의 집합으로 생각하면서 자연과 의지 사이의 균열을 생성했다. 자연은 계획이나 도구로 나타나며, 의지는 이 계획 위에서 행동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현주의적 이론에서는 "자연의 목소리는 의지를 통해 말해야 한다."(51) 표현주의적 인간학은 계몽주의적 사고가 삶의 통일성을 해치는 것으로 여기며 그 대신 주변 환경과의 유대를 강조한다. 표현주의 인간학으로부터 발생한 열망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통일성과 전체성에 대한 열정적 요구(52) : 표현주의적 견해는 계몽사상가들이 인간의 본성을 객체화하여 인간을 쪼갰으며, 인간의 삶을 왜곡시켰다고 비판한다. 그것은 이원론을 부정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계몽은 인간의 실제 삶의 현장과 인간을 분리시켜 잘못된 표상의 세계를 도입한다. "표현주의는 강력한 반이원론이고, 데카르트의 유물인 육체-영혼 이원론 혹은 정신-자연 이원론을 극복하고자 한다. 표현주의는 이런 분리를 가로지르는 삶의 범주를 향하고 있으며, 위에서 본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를 끌어들인다. 육신을 입지 않은 어떤 정신적 실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거부는 우리가 보게 될 거서럼 헤겔 철학의 근본 원리들 중 하나이다." (53)

2. 표현주의적 이론은 자유를 인간 삶에서 하나의 중요한 가치로 만든다. 계몽주의적 사고에서 자유는 자기 규정하는 주체는 외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표현주의적 이론의 자유는 진실한 자기 표현이다. 이에 따르면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아 속에 내면화된 잘못된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 역시 자유가 아니다. 

3. 표현 이론은 계몽이 위험한 것으로 여겼던 자연과의 연합을 위한 영감을 부여했다.(54) 인간과의 교감 : 계몽주의적 사고에서 자신 내부의 기계적 관계만을 허용하기 때문에 객체화된 자연은 계몽적 삶에서 추방된다. 그러나 표현 이론은 이런 이원론을 거부하고 자연도 삶으로 수용한다. 주체로서의 내가 내 육체와 하나라면 나는 내 육체가 외부의 더 큰 자연과 상호작용한다. 그리고 내 삶이 나의 표현적 활동 속에서 완전히 반영되어야(나의 느낌/비전이 나의 실존에 적합해야) 한다면 자아에 대한 나의 느낌은 내가 일부로 있는 '보다 큰 삶의 흐름(자연)'에 대한 느낌과 연결되어야 한다. 인간은 자연과의 유대와 공감 속에서 연합되어 있다.

  그러나 표현주의가 전근대적 사고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전근대적 세계관에서의 세계는 이상적 의미, 즉 합리적 질서상을 구현하고 있다고 간주되며, 우리는 이런 질서상을 좇으며 세계와 연결될 수 있다. 그러나 표현주의적 세계관에서의 세계는 그저 우리가 속해 있는 보다 큰 삶의 흐름이며, 우리는 이 흐름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세계와 연결된다.

4. 자연과의 교감은 동일한 힘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교감에 적용된다.(59) : 계몽주의적 사고의 주체들은 도덕적으로 자기 충족적인 원자들이다. 그러나 표현주의적 주체는 개인 보존을 넘어서 "공동체적 삶을 분유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60)을 추구한다.


표현주의적 의식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간극을 극복하고자 하며, 객체성을 주체성의 표현으로, 혹은 주체와 상호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세계와의 통일에 대한 이런 강력한 요청은 주체의 실존을 위협하지 않는가? 이것은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질문 혹은 딜레마이다. (62)

  계몽의 객체화에 저항하는 또다른 움직임은 칸트로 대변되는 '급진적 자유'의 주체성이다. 여기서 말하는 급진적 자유란 "자연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순수한 도덕적 의지로서 자기 규정자(67)"가 지니는 자유다. 이럴 때 주체는 자연으로부터 독립적인 존재가 된다. 칸트는 주체의 선험적 논증을 통해 경험으로부터 발견되지 않는 주체의 본성을 알고자 하였다. 주체는 우리가 대상들을 관찰하기 위한 토대이며, 관찰 이전에 선재해야 하는 어떤 것이다. 관찰하는 자로서의 주체는 관찰되는 대상이 아니며, 이 주체는 경험이 아닌 추론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칸트의 경험세계는 궁극적 실재와는 구별되는데, 그의 경험세계는 주체의 정신구조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에 세계의 궁극적인 본성은 우리가 결코 알아낼 수 없는 미지의 세계[각주:3]에 있다. 칸트가 말하는 도덕적 삶은 자율성에 기반한다.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부여한 도덕 법칙에서 오는 올바른 동기에 따라서 올바르게 행동해야 하지만, 그 도덕 법칙은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합리적 의지로서의 자신에게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자율'이다[각주:4]. 칸트의 급진적 자유와 앞서 언급된 표현 이론의 유사점은 인간의 완성과 삶의 총체적인 목적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반면, 급진적 자유는 자유로운 주체와 자연과의 분리를 전제해야지만이 가능하며 표현 이론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 두 생각은 1790년대의 독일 사회의 변화(구질서에서 신질서로의 이행, 프랑스 혁명과 공포정치 등의 영향)와 맞물려 당시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사람들은 위대한 변화가 필요하며 또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다른 시기 같으면 사치처럼 보이는 희망을 불러일으켰다."(70) 여기서 말하는 '희망'이 바로 급진적 자유와 표현 이론의 통합이다. 이것을 위해 노력한 세대가 1790년대 세대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중 하나가 역사 속에서 고대적 삶과 근대적 삶의 통합을 시도하는 것이었다(바로 이것이 청년 헤겔이 행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 통일은 다시 분열을 낳는다. 이성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내적으로 분열되어야 하기 때문에, 통합된 것은 새로운 분열을 가져오면서 자연스럽게 소멸했다. 이 과정을 거쳐 우리는 보다 높은 단계의 통일체로 끊임없이 나아가게 된다. 

  헤겔이 이 문제에 대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재통합을 이루기에 앞서 피히테, 실러, 셸링과 같은 사람들의 고민과 노력이 있었다. 피히테는 칸트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하며 칸트의 물자체 개념을 거부하고 세계는 철저히 주체의 인식으로만 정립 가능하다고 제시한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역설적으로 피히테는 칸트를 벗어날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그가 내세운 '주체로서의 일원론'은 자연을 그저 제거해 버림으로써 자연과 주체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다[각주:5]. 실러의 접근법도 이와 유사했다. 그는 주체인 우리들이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재료를 구성하며, 지각한 것을 경험하게 해주는 '감각적 충동'과 그런 경험에 질서와 형식을 부여하는 '형상 충동'이란 개념을 제시한다. 그러나 실러는 피히테가 보지 못했던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삶과 형식을 통합하는 '3충동의 가능성'이다. 실러는 이를 미(美)와 동일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 본성의 두 측면은 미 안에서 조화롭게 만난다. 아름다운 대상은 감각적 형식(sensible form)이다."(77) 3충동은 '놀이 충동'이라고도 불리는데, 놀이를 통해 인간과 인간의 자유를 완벽히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한다. 미의 경험이 우리 안에서 수동적인 것과 자발적인 것의 통합을 일으키는 것처럼, 놀이에서 자연과 정신은 하나가 된다. 그러나 실러 역시도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실현된 인간성의 모습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이 목표를 향한 점진적 진전을 보여 주었을 뿐이다."(79)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자연을 맹목적 힘들이나 야생적 사실들과 연관된 영역으로 생각하는 한, 이 자연은 인간 안에 있는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것과 융합할 수 없다. [이 경우] 우리는 자연주의를 따라 자연에 항복하거나 우리 자신 내부에서 때때로 나타나는 부분적 일치에 만족해야 한다. 이때 가끔씩 나타나는 이 일치는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습득되며, 우리와 언제나 상호작용하고 있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며 변형되지 않은 자연의 거대한 현존에 의해 끝없이 위협받는 그런 일치이다. 만약 급진적 자유에 대한 열망과 자연과의 통합적인 표현적 통일에 대한 열망이 함께 완전하게 충족될 수 있으려면, 만약 인간이 거의 완벽하게 자기 규정하는 주체로 머물면서 동시에 자기 내부의 그리고 우주 안의 자연과 하나로 있을 수 있으려면 나의 기본적인 자연적 경향성이 자발적으로 도덕성과 자유로 방향 맞춰져 있어야 한다."(81) 피히테를 넘어서고자 노력했던 셸링의 자연철학은 주체성을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근본 원리로 본다. 그는 자연 안에 있는 무의식적 주체성이 완전한 주체성과 재결합하려 한다고 본다. 이러한 시도는 '예술'에서 얻어진다. 예술은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이 만나는 지점이며, "이 지점에서 자발성과 수용성, 자유와 자연은 하나이다. 그리고 이 회합 지점은 자연과 의식이 궁극적으로 동일한 근원, 즉 주체를 갖는다는 존재론적 사실에 묶여 있다."(86) 자연이 그 자체로 어떠한 내적 힘이라고 보는 시각은 범신론으로 흘러가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주체의 급진적 자유가 없어지게 된다. 따라서 이 둘의 조합은 단순한 범신론과는 다르며 서로 상호작용하는 두 존재이다.[각주:6] 셸링이 자연 속에서 창조적 삶과 사유의 창조적 힘이 동일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통해 정의하고자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종류의 것이었다. "자연은 볼 수 있는 정신이고, 정신은 볼 수 없는 자연이다."

  헤겔은 자유와 자연에 대한 피히테적 견해에 대해 부정적이다. 두 요소(자연과 주체)는 완벽한 통일을 이룰 수 없다. 자아는 자신이 극복하고자 하는 비아를 정립하는데, 주체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비아가 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아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비아의 극복은 실현되어야 하지만 완벽하게 실현될 수 없는 목표를 향한 주체의 자기 실현의 무한한 과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 자연은 주체에 마주해 있는 것이 아니다. 주체와 객채(자연)의 통일은 자연이 주체의 진정한 표현일 경우에만, 말하자면 자연이 스스로 자유와의 통일을 이룰 수 있는 독립적인 정신적 실재일 경우에만 도달할 수 있다."(83) 헤겔의 사유(정신, 혹은 가이스트Geist)는 셸링의 생각과 유사하다. 그가 말하는 신은 전통적 유신론에서의 신이 아니라 '인간을 통해서만 정신으로 살아가는 정신' 이다. 이 정신은 인간을 통해서만 살아가지만, 인간으로 환원될 수는 없다. 그것은 어쨌든 전체 우주의 근저에 놓인 정신적 실재이기 때문이다. 또한 헤겔은 의식과 무의식의 통일이 이성으로 완벽하게 파악될 수 없는 직관의 대상이라면 진정한 표현의 종합일 수 없다는 점을 간파하였다. 그것은 이성의 토대에서 파악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이성 대신 환상이나 창의성 혹은 예술의 길을 선택한 낭만주의자들과 헤겔의 차이점이 생겨난다. 헤겔은 "궁극적 종합은 이성이 포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함과 동시에 "주체는 본질적으로 활동성이며 무한한 활동성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해결책은 그의 무한성 개념에 놓여 있었다. 그의 무한성 개념은 유한자를 통합하고 있으며, 원이 그러하듯 다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 이러한 유의 생각만이 무한한 활동성을 완결된 형식에 한정하는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다."(98) 이런 합리적(이성을 통한) 이해는 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자, 합리적인 것과 정념적인 것 등의 구분을 의식해야지만이 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헤겔은 궁극적 종합이 통일뿐 아니라 분리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1. 17세기 과학혁명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으며, 인식론적 혁명과 더불어 시작되 사유의 노선을 의미한다.(15) 베이컨, 홉스, 데카르트, 로크 등의 사상가들이 발전시켰다. [본문으로]
  2. 이러한 사고에 기여한 철학자로는 루소(덕과 악의 대립→자아 의존성과 타자 의존성의 대립)나 라이프니츠(모나드론과 그 속의 코나투스 개념)가 대표적이다. [본문으로]
  3. 예지계 [본문으로]
  4. 헤겔은 이를 비판적으로 본다.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연에 의존하며 욕망과 경향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칸트의 순수이성과 일치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일치한다 해도 "더 이상 대립이 없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자유가 필요할 것인가? 칸트는 이 문제를 결코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68) [본문으로]
  5. 피히테가 놓치고 있는 자연[우주적 실체]는 스피노자에게서 발견할 수 있지만, 스피노자는 반대로 유한한 주체성을 제거해 버린다. [본문으로]
  6. 괴테와 낭만주의자들을 거쳐 헤겔에 이르는 가운데 서로 다른 형식들로 계속 등장하는 두 개의 근본적 사상이 있다. 하나는 "우리는 자연과 동일한 실체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자연을 실제로 알 수 있으며, 자연을 분해하려고 할 때가 아니라 실로 이 자연과 공감하고자 할 때에만 우리는 이 자연을 적절히 알 수 있다." 둘째, "우리가 어떤 의미에서든 자연을 만든 것과, 즉 자연 속에서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는 정신적 힘과 결합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을 안다."(89)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