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기원인(causa sui/cause of itself)


1) 정의

"나는 그 본질이 실존을 함축(포함)[각주:1]하는 것, 곧 그 본성이 실존하는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는 것을 자기원인으로 이해한다."

여기서 실존을 함축한다는 것은 그 실존 없이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기원인이라는 개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데카르트이지만 스피노자는 신 존재 증명과 자기원인 개념을 분리시켰다. 스피노자는 무한한 연쇄의 기원, 시초로서의 자기원인을 상정하지 않는다. 자기원인은 중세 스콜라철학이나 데카르트에게서 신 존재 증명을 위해 종종 쓰였다. 신은 논리의 무한한 퇴행을 막는 근거로 작용했다. 최종 원인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신이 없다면 세상의 존재를 설명할 기반이 사라지는 것이다. 


2) 자기원인 개념의 통상적인 의미

자기원인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가 자기의 원인이 되려면 자기가 있기 전에 자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모순이다. 니체는 이를 극단적으로 '자기 강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각주:2]. 스피노자 역시 이런 모순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스피노자가 말하는 자기원인 개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의 시간적인 앞섬을 의미하지 않는다.


3) 스피노자 철학에 고유한 의미

- 초월성에 대한 비판 : 자연은 자기 이외의 다른 원인에 의거하지 않는다. 자연은 실존하기 위해서나 작용하기 위해서 신이라는 초월적인 원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연의 밖에 있는 '자연의 원인' 따위는 없다. 이는 '영혼'으로부터 기원을 찾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에 가까우며, 신이 無로부터 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말하는 성경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는 자기원인이 에티카 첫머리에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 역동적인 장(場)으로서 자연 : 자기원인은 자연이 근본원인이 되므로 자연은 실재들의 생산, 소멸, 성장, 쇠락, 변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체계의 장이다.

- 비재귀적 원인으로서의 자기원인 : 무와 실존을 동등한 두 개의 항으로 정립하는 라이프니츠와는 달리, 스피노자는 비실존 내지 무를 이미 실존의 한 양태로 포섭하고 있다. 스피노자에게 무는 실재성을 지닌 사태가 아니며, 논리적 근거나 인과성의 원리는 항상 이미 일어난 존재함이라는 사태 이후에 적용 가능함을 의미한다. (스피노자는 라이프니츠를 '있지도 않은 무 개념을 만들었다'고 비판할 수 있으며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를 '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의 자기원인은 존재자나 실재res[각주:3]의 필연적 실존을 의미하지 않으며, 실존 그 자체를 의미한다. 즉 누구에게 귀속하거나 누구의 실존으로 존재하기 이전의 있음이라는 사태 자체를 말한다. 스피노자에게는 본질이 항상 이미 영원하게aeternum 실존을 함축하고 있으며, 실존은 항상 이미 본질의 행위, 현행적인 본질이다. 따라서 스피노자의 자기원인 개념은 암묵적으로 자연의 외부나 자연 이전에 성립하는 근원적인 그 무엇과는 무관하며 근본적으로 부정이나 결핍, 무를 포함하지 않는 있음의 순수한 실정성을 말한다.



2. 유한


1) 정의

"동일한 본성의 다른 실재(res/thing)에 의해 한정될 수 있는 실재를 자신의 유(類) 안에서 유한하다고 한다. 예컨대 하나의 물체는 유한한데,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그 물체보다 더 큰 물체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유/생각은 다른 생각에 의해 한정될 수 있다. 하지만 한 물체는 한 사유에 의해 한정되지 않으며, 사유 역시 물체에 의해 한정되지 않는다." 즉, 물체는 물체끼리, 관념은 관념끼리 연결된다. 속성[각주:4]이 다른 것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될 수 없다. 인과관계는 같은 속성을 공유하는 것들끼리에서만 성립한다. 신체는 정신과 다르다.


2) 왜 유한이 두 번째 정의로 나올까?

데카르트는 실체를 무한 실체(신)와 유한 실체(정신이나 물체)로 나누면서도 동시에 실체를 "실존하기 위해서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라 정의하는 모순에 빠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데카르트는 유한한 실체 역시 신을 제외한다면 실존하기 위해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역시 실체라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실체 개념이 모호하다고 비판하며 '실체'에 대한 보다 엄밀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유한'에 대한 정의를 제시한 것이다. 유한한 것은 양태이며, 이는 '실체'가 될 수 없다. 즉 '유한 실체'는 없다. 그것은 양태다.


3) 정신과 물체 또는 관념과 물체의 상호작용의 불가능성

데카르트는 물체들이 아무런 내적 운동력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오직 연장의 속성에 따라, 또는 연장의 속성에 속하는 몇 가지 성질들(크기나 모양, 운동 등)에 의해서만 규정된다고 말한다. 반대로 정신은 연장의 성질은 전혀 지니지 않고 오직 사유 속성에 의해서만 규정된다. 또한 정신은 물체가 거의 지니지 못한 동일성과 개별성을 지니고 있으며 의지의 자유까지 지닌다. 이런 의미에서 물체와 정신은 서로 관계가 없는 상이한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동등한 위치에 놓이지도 못한다. 스피노자에게도 이 둘은 서로 상호관계가 없지만, 그는  데카르트와는 달리 정신(또는 관념)과 물체를 동등한 위치에 둔다.



3. 실체(substance)


1) 정의

"나는 자신 안에 있고 자신에 의해 인식되는 것, 곧 그 개념을 형성하기 위해 다른 실재(res/thing)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나는 실체로 파악한다."  

: 무언가가 자신 안에 있다면, 그것은 다른 근거에 의존하지 않는 자기원인적인 것이다. '연장'이라는 개념은 다른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쓰이며 그 자신의 안에 있는 하나의 '실체'다. 그러나 '운동'은 연장이 전제되어야 성립하는 개념이므로 다른 것 안에 있는 개념이다. 즉 실체가 아니다.


2) 실체에 대한 전통적 정의

아리스토텔레스 : 실체는 "첫째로 있는 것"이다. 즉 모든 것에 시간상으로나 존재상으로나 앞서는 것이며 다른 것들을 이야기하기 위해 항상 먼저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체는 어떤 속성이나 술어가 없어도 스스로 존립 가능하지만 속성이나 술어는 실체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

데카르트 : 실체는 "실존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다르게 실체는 가장 먼저 알려지지 않는다. 실체는 속성들을 통해서만 사후적으로 성립할 수 있다. 또한 데카르트는 속성을 여러 가지로 분류한다.

스피노자 : 데카르트에서 더 나아가 실체를 두 가지 측면에서 정의한다. 실체는 '자신 안에 있으면서 또 자신에 의해 인식되는 것'이어야 한다.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은 유한 실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대신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유한 실체'를 '양태[각주:5]'로 정의한다. 자신에 의해 인식된다는 것은 실체가 완전히 인식 가능한 존재라는 주장과 같다. 실체는 원칙적으로 전체가 다 인식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속성들을 인식해야 한다.




4. 속성(attribute)


1) 정의

"나는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으로 지성이 지각하는 것을 속성으로 파악한다." : 실제로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지성이 '그렇다'고 지각하는 것이기 때문에 속성 그자체는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들린다. 이 해석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2) 속성에 대한 데카르트의 정의 : 주요 속성과 성질로서의 속성을 구분하지만 엄격하게 구분하지는 않는다.


3) 스피노자와 속성의 문제 :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주요 속성', 즉 사유와 연장을 단적으로 "속성"으로 규정하고 데카르트가 모호하게 성질들, 속성들 또는 양태들이라 부른 개념들을 보다 엄밀하게 구별 분류한다.

- 속성 :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 무한하게 많은 속성이 존재하지만 정신과 신체로 이루어진 인간은 사유와 연장이라는 두 속성만 인식 가능하다.

- 특성proprietas/property : 실체 또는 실재의 본질을 구성하지는 않지만 그것에 고유하게 속하고, 실재의 본질로부터 파생되는 성질들을 말한다.

- 상상적 성질 : 신학비판에서 많이 나오는 내용인데, 인간 자신의 신체 상태에 대한 상상적 통념들을 신이나 외부 대상에게 투사하는 것을 말한다. e.g.신의 선함이나 최고선


4) 속성 개념을 둘러싼 논쟁

앞서 말한 대로 해석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크게 주관적 해석론과 객관적 해석론 두 가지로 나뉜다.

- 주관적 해석론 : 헤겔에서 유래하였다. "지성이 지각하는" 것만을 속성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속성은 실체의 객관적 본질이 될 수 없으며 인간 지성이 실체를 파악하는 하나의 관점으로 전락한다. 이는 속성 자체를 주관적 성질로 만들어버리기 때문에 스피노자가 속성과 특성, 상상적 성질 등을 구별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 객관적 해석론 : 20세기 후반 이후의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파악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관점은 왜 스피노자가 "지성이 지각하는"이라고 굳이 써놨는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점, 또한 속성이 무한히 존재한다면 무한히 많은 본질을 가지는 실체가 어떻게 유일하고 통일성을 가지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5. 양태(modus/mode)


1) 정의

"나는 실체의 변용들, 곧 다른 것 안에 있으며 또한 이 다른 것에 의해 인식되는 것을 양태로 이해한다." : 여기서 변용(affectio/affection)이라는 것은 외부 물체가 인간 신체에 부딪히고, 거기에 남는 흔적들을 말한다. 물리적 변화와 결과를 말하는, 신체와 관련된 용어이다. 1부의 affection은 실체 이외의 나머지 것들을 말하는데  2부 이하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하는 개념이다. 자립적이고 자율적인, "자신 안에 있는" 실체(사유, 연장)와는 반대된다.



2) 양태에 대한 정의의 독특성

스피노자는 양태를 "다른 것 안에 있으며 또한 이 다른 것에 의해 인식되는 것"으로 정의한다. 이는 양태에게는 아무런 자율성이나 자립성이 없다는 것으로 보인다.


3) 데카르트와 스피노자의 차이

- 데카르트의 양태 개념은 스콜라철학의 "우연 속성(accidens/accidents)"과 달리 실체와의 내재적 관계를 함축한다. 양태는 실체가 "변용되거나 변화되는 것을 고려"한 용어이다. 어떤 사물과 독립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데카르트의 양태라면 스피노자의 양태는 실체의 상태나 변화 방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사물 그 자체를 의미한다. 또한 스피노자에게는 무한 양태들도 존재한다.


***A라는 물체가 신체와 만나면 신체는 변용되며, 거기엔 흔적(imago)이 남는다. 정신은 A가 신체를 변용하여 imago를 남기리라는 것을 인지하는 인지작용(imaginatio)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affectus/affection라는 감정작용이 동반된다. 이 감정변화는 신체에 다시 영향을 준다. 또한 A가 준 imago가 사라지더라도 B라는 새로운 물체에 대한 imaginatio가 시작되기 전까지 정신은 일종의 관성으로 A를 생각한다(contemplatio). 

e.g. 맛있는 걸 먹음(흔적)->(인지)행복해짐(감정작용)->활력이 생김(신체에 다시 영향을 줌) 

**affect를 정동으로, affection을 정서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적절치 못한 번역어인 듯하다. 그래도 이미 학계의 주류가 된 듯.



(2)양태와 변용

스피노자는 양태와 변용들이라는 용어를 동의어처럼 사용한다. 그러나 이 둘은 명백히 다른 단어이다. "변용들"이라는 개념은 실체와 개별 실재들 사이의 내재적인 관계가 어떤 형태를 띠는지 잘 보여준다.

***변용-변용되는 것은 능동과 수동 개념이 아니다. 이것이 능-수동 개념이라면 우리는 능동적이기 위해서 변용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는 먹지도 말고 사람을 만나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변용된다고 해서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능동적이기 위해서는 오히려 '잘' 변용되어야 한다.



6. 신 ***복잡하므로 추후에 더 정리할 예정임


1) 정의

"나는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자(ens/being), 곧 각자 영원하고 무한한 본질을 표현하는, 무한하게 많은 속성들로 구성된 실체를 신으로 인식한다."

"나는 절대적으로 무한하다고 말하지 자신의 유 안에서 무한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유 안에서 무한한 것에 대해서 우리는 무한하게 많은 속성들을 부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절대적으로 무한한 것의 본질에는, 어떤 본질은 표현하면서 부정은 함축하지 않는 모든 것이 속한다."

- 헤겔은 스피노자가 절대자 실체에서 출발하여 속성으로 가는데, 그 속성은 하강의 운동이라고 말한다. 사유라는 속성과 연장이라는 속성은 서로 섞이지 않는데, 헤겔이 이 사이는 변증법적인 모순 관계라고 말한다. 이 모순관계의 통일체가 실체다. 즉 (헤겔의 변증법적 논리로는) 사유속성이 연장속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절대자의 본질을 표현하는 그 무언가가 있다고 주장한다. (표현의 논리, 긍정하는 차이의 논리)



2) 신에 대한 정의의 중요성과 쟁점들 (교재 참고) 추후 보충




7. 자유


1) 정의

"자신의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실존하고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행위하도록 규정되는 실재는 자유롭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실재에 의해 일정하게 규정된 방식으로 실존하고 작업하도록 규정되는 실재는 필연적이라고 또는 오히려 제약되어 있다고 한다."




8. 영원


1) 정의

"나는 오직 영원한 실재의 정의로부터 필연적으로 따라 나오는 것으로 인식되는 한에서의 실존 그 자체를 영원으로 파악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실존은, 실재의 본질과 마찬가지로 영원 진리로 인식되며, 따라서 지속이나 시간으로는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속이 시작과 끝이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하더라도 그렇다."





  1. 2부의 정리 49의 증명을 참고할 것. "...이러한 긍정은 삼각형의 개념 또는 관념을 함축한다. 곧 삼각형의 관념 없이는 인식될 수 없다. 왜냐하면 A가 B의 개념을 함축(involvere)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A가 B 없이 인식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 [본문으로]
  2. 니체, <선악을 넘어서> 41 [본문으로]
  3. 영어의 thing보다 널리 쓰인다. 생물, 무생물, 신, 인간 모두 res다. [본문으로]
  4. 속성attributum은 사유속성과 연장속성이 있다. 사유속성은 물리적으로 환원되지 않는 심리적인 세계이며 연장속성은 물리적인 자연 전체를 말한다. 이 둘만이 자신 안에 있고 자신에게 인식되는 '실체'에 해당한다. [본문으로]
  5. "다른 것 안에 있으며 또한 이 다른 것에 의해 인식되는 것"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