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gel by Charles Taylor




1부 사변 이성의 요청

 2장 헤겔의 청년기


  앞서 정리한 대로 17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헤겔은 당시의 표현주의적 조류에 깊이 영향을 받았으며, 이외에도 계몽의 도덕적 열망과 기독교라는 두 요소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이 세 조류는 계속해서 갈등했으나 헤겔은 이를 통합하고자 노력하였다. 튀빙겐의 청년 헤겔은 그리스의 이상을 회복하는 것이 계몽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기독교의 경우 초자연적 권위를 내세우며 인간의 죄 많은 본성과 정신[영] 사이의 분열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를 함께 통합시키는 것은 어려운 문제였다. 청년 헤겔이 쓴 초기의 글들은 "계몽의 자율적 이성의 승리, 그리스 정신에서 꽃피웠던 것의 재창출, 그리고 예수의 순수 가르침의 회복"(104)에 대한 열망으로 시작된 것이다. 칸트가 등장한 이후, 종교는 도덕성의 관점, 즉 정언명령과 도덕법칙의 당위성에서 이해되었다. 이 당위성은 종교적 신앙이나 신의 명령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라 합리적 존재로서의 나 자신이 나에게 부과한 것이다. 칸트적 사고에서 인간은 순수한 도덕의지의 주체이면서 도덕적으로 행위할 때 성스러움에 가장 근접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합리적이면서 동시에 감각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도덕 법칙에 대해 동의한다 해도 도덕의지의 주체로서 도덕적으로 행하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행하기 위한) 끊임없는 투쟁이 수반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분열과 대립을 가질 수밖에 없다.

  헤겔은 이러한 분열과 대립의 극복이 칸트와는 다른 관점의 '종교'를 통해서 성취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종교는 "생동적인 경건으로서 전인[온전한 인간]을 위해 좋은 것을 수행할 동기를 부여하는 위대한 원천"(106)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헤겔은 객관 종교와 주관 종교를 구분한다. 객관 종교는 외적으로 드러나는 실천이며, '신학學'이다. 주관 종교는 "선과 이 선의 입안자로서의 신에 대한 인간의 생동적 경험"이다. 또한 그는 사적 종교와 민중 종교도 구분하는데, 사적 종교는 개인의 삶을 그 개인적 관계와 가족 관계에서 건드리며, 민중 종교는 사회라는 공적 삶과 엮여 있는 것이다. 헤겔이 생각하는 민중 종교의 대표적인 모델은 고대 그리스이다. 이 세계에서 종교는 사회적 삶의 필수요소였다. 그는 이런 구분을 통하여 칸트적 모델에서처럼 이성과 정열, 혹은 정신과 감성이 대립하는 것이 아닌 "온전한 인간이 자발적으로 도덕적 선을 향해 나아가는 그런 전체성과 통일성을 회복"(107)하고자 했다. 그가 내세우는 통합의 종교는 계몽과 모순되지 않고 미신적이지 않은 '주체화된 민중 종교'이다. 그가 제시하는 새로운 종교의 모습은 다음과 같다.


① 그 교설은 보편적 이성에 근거해 있어야 한다. : 계몽에 충실할 것. 종교는 합리적 교설과 반대되는 어떠한 것도 가르쳐서는 안 된다.

② 상상, 마음, 그리고 감성이 공허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 이성뿐만 아니라 '상상'과 '마음', 즉 인간 본성의 감각적 측면도 전인적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③ 민중 종교는 삶의 모든 욕구, 공적인 국가 행위가 이 종교와 연결되게 하는 특성을 가져야 한다.(109) : 이성과 전인(온전한 인간)의 결합이 삶의 모든 욕구와 관련이 있어야 하며, 더 나아가 '폴리스의 공적 행위'로 확장되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민중 종교)


1790년대의 헤겔[각주:1]이 그려 내는 기독교의 예수는 총체성을 가르치는 사람이며 유대 율법의 도덕성에 대항하여 이성과 마음에 기초한 가르침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그의 복음은 하나님의 의지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의무와 권리에 대한 감정"이다. 헤겔의 예수는 칸트 윤리학과 표현주의적 이상을 통합시킨다. 그는 외적 명령으로 전해지는 율법에 대항하며 스스로의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을 제시하고, 이로써 타율성은 자율성으로 바뀐다. 

실정 종교는 우리가 의심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권위에 의해 주어진 계율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이성이 아니라 권위에 기초한 종교이다. 여기서는 유대교가 특정 형태로 고착화 되어버린 실정 종교로 나타나는데, 기독교의 예수는 실정 종교로 굳어져 버린 유대교와는 다른 자신의 민중 종교를 설파한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의 운명을 알고 있다. 기독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멜랑콜리의 종교이다. 예수의 설교는 죽음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관철됐을 뿐이다. 그리고 이 실패는 "기독교가 이미 극복했다고 하는 인간의 정신적 소명과 자연 속에서의 그의 삶 사이의 균열을 의미한다."(113) 결국 균열은 다시 생기고 말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헤겔은 균열에 대한 사유를 발전시키고, 칸트를 재평가하게 된다.

  헤겔은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에서 유대교의 아브라함을 다룬다. 아브라함은 유대교를 설립하면서 자연과 자기 부족이 지니고 있던 원래적 통일[통합]을 벗어난다. 그는 자연을 정신에 대립하는 중립적 물질로 인식하고, 인간 정신에서 '분리'시킨다. 자연은 객체화되며, 성스럽고 신령한 질서의 체현이 아니라 인간 의지에 의해 모양을 형성하게 되는 원료로 전락한다. 이런 사고에서는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신에게 빌붙음으로써"만 가능하다. "자연의 일부일 수밖에 없는 인간이 자연의 지배자가 되려면 지배 관계에 종속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적대자'로서의 자연은 지배당하거나 지배할 수밖에 없다. (...) 그러므로 신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한 약속은 그리스인이 성취한 자연과의 표현적 통일이 아니다."(116) 이것은 헤겔의 '불행한 의식'이라는 분석 개념의 초기 형태이다. '불행한 의식'은 자연과의 분리의 의식, 통일성과 상호성이 지배와 예속으로 대체되는 의식, 그리고 인간과 자연, 자연과 정신, 인간과 인간 사이를 분리시키는 의식이다. 헤겔이 보기에 칸트의 도덕적 인간은 낯선 법을 내면화하여 자기 자신의 노예가 된다는 점이 실정성에서 기원하며, 이는 결국 실정 종교와 본질적으로 같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헤겔은 '운명'이란 개념을 제시한다. 법에 의한 심판은 개념에 의한 심판이며, 이는 인간의 삶과 개념의 세계를 제도적으로 구분한다. 이 경우에도 분열은 남는다. 그러나 운명이라는 개념에 입각한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는 운명으로부터 받는 형벌은 삶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부과되는 것으로 삶과 화해할 수 있다. 위반은 삶을 통해 치유 가능하다. ""운명 속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삶을 인지"하며, "삶은 자신의 상처를 다시 치유할 수 있다.""(121) 즉, 법의 모델에서 내려지는 형벌은 삶의 테두리 바깥에서 오는 외부적인 것이다. 그렇기에 삶과 형벌은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운명의 모델에서 내려지는 형벌은 우리의 운명이라는 형태로 드러나며, 그것은 결국 우리의 삶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 모델에서 삶과 형벌은 통합된다.

  칸트의 도덕적 자율성이 표현주의와 만들어내는 균열(의무와 욕망의 분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헤겔의 예수가 칸트적 의미의 '도덕성'을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경향성과 선의 자발적 통일을, 따라서 법을 초월하고 완성할 것[각주:2]을 설교한다는 생각에서 잘 드러난다. 헤겔의 예수는 '화해의 정신'과 '아가페적 사랑'을 내세우며 균열을 메우고자 한다. 순수한 자(예수)도 운명으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 운명은 순수한 개인이 공격당할 때 그에 투쟁하거나 그냥 고통을 감내하는 방향으로 삶의 통일성을 위반하게 만든다. 이 경우 개인은 스스로의 권리를 기꺼이 자발적으로 포기하거나 철회함으로써 타자와 분리되는 것을 막는다. 뺨을 때린 자에게 증오와 분노 대신 반대쪽 뺨을 내미는 행위는 분리나 균열을 넘어선 화해를 가능하게 한다. 헤겔은 이러한 자발적 후퇴를 '영혼의 아름다움'이라고 일컫는다. 예수는 이 후퇴를 통해, 자신이 절대권력을 지닌 신으로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법적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메시지를 관철시키고자 하였다. 기독교적 의식은 자연과 삶의 관계들을 객체화된 실재로 만든 유대교와는 달리, 이 모든 관계들이 사랑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요청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관계를 객체화된 것으로밖에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기독교적 의식은 그런 관계들을 금욕을 함으로써 포기하거나 항구적인 양심의 가책을 가지면서 향유해야 한다. 여기에 균열은 여전히 남아 있고, 기독교적 의식은 그리스적인 아름다움의 의미를 회복하는 데 있어서 유대교적 의식만큼이나 실패할 수밖에 없다."(125) 이러한 설명으로 우리가 도출해낼 수 있는 '기독교에 내재한 특성'은 다음과 같다.


① 그리스의 종교와 달리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공적 표현을 포기한 사적 종교이다.

②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이런 분리는 보다 심오한 균열의 외적 표현이다.

③ 결국 기독교는 실정성으로 회귀한다.  (실패한다)


헤겔은 기독교가 성장한다 해도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교회가 성장하고 불가피하게 세상과 엮이게 되었을 때 위선이 증가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양삼의 가책도 증가했다. 세상에 자리 잡은 또 다른 교회가 세상에서 권력을 가짐으로써 필연적으로 양자[교회와 세상] 모두 부패해지고 말았다. 순수함이 이미 불순함과 섞여 있을 때 불순함에 대항한 순수함의 투쟁은 "끔찍한 것"이 된다. 더 나아가 순수함을 얻고자 하는 이런 노력은 실정적 종교로 전이되어서 때 묻지 않은 신앙을 유지하고자 하는 투쟁이 되며, 교회사에서 아주 많이 드러나듯 박해와 이단 사냥을 산출한다. (...) 따라서 기독교는 진실로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 기독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125-6)


  이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종합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여기서 헤겔은 보편적 사랑 공동체를 단호히 추구하는 예수의 종교가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를 지탱했던 공적 종교와 조화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보편적 사랑 공동체는 너무 이상적이며, 구성원을 도시의 세속적 삶으로부터 떨어뜨리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폴리스 역시 시민사회와 소유 관계가 중심적인 근대 사회와 조화될 수 없다. 이제 헤겔은 그리스의 통일성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수의 기독교는 폴리스의 경계를 넘어서야 했다."(129) 헤겔은 '통일성의 회복과 분리의 극복'이라는 기존의 목표를 '대립자의 화해'로 바꾼다. 이제 헤겔에게 있어 분리는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에, 즉 극복해야 할 부정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통일의 정신 속에서 분리를 단순히 제거함으로써 한 측면이 다른 측면을 일방적으로 정복한다고 해서 해소될 수 없다. 오히려 두 측면은 각각의 요구가 통합적으로 만족될 때 다소간 통일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헤겔의 성숙한 체계가 도달하고자 한──아마도 불가능한──과제이다."(130) 

  그의 초기 사유와 후기 사유에는 크게 네 가지의 변화가 있다. 헤겔은 '분리의 지양'을 철학의 형식적 과제라고 말한다. 해결책은 분리와 동일성 둘 다 고유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절대자는 동일성과 비동일성의 동일성이다. 대립과 통일성은 절대자 안에 있는 두 측면이다."(132) ①분리가 발생하는 것은 불행이나 실패가 아니라 발전 과정에 수반되는 '필연'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기 실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근원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부족部族의 상태를 깨뜨리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그는 셸링[각주:3]과 다른 낭만주의자들과 구별된다. 그는 분리를 필연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의 전환과 더불어, ②역사의 개념을 인간적 운명의 필연적 전개로 발전시킨다. 역사는 원처럼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나선 형태로, 통일은 분열로 이어지고, 높은 단계에서 통일된 뒤에 다시 새로운 분열로 이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은 오성Verstand의 한계를 넘어선다. 오성은 경험을 토대로 추성하고 분석하여 그것을 분열된 형태로 이해할 수밖에 없으므로, 전체를 이해할 수 없는 사유 형식이다. 이것은 반성Reflexion이라는 사유 방식(대립된 개념쌍, 분리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한 번 보완된 후, 이성Vernunft 개념으로 진화한다. 합리적 자율성의 종합은 이성의 언어로 표현된 철학적 해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헤겔 철학의 세 번째 변화는 ③인간에서 정신으로 무게중심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그는 초기 이론에서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보여주며 때때로 인간을 유일한 정신적 존재로 그려내고는 하였다. 그러나 그는 후기로 가면 정신을 절대자 개념으로 내세우며 초기 사유를 극복한다. 그의 정신 개념은 우주이면서 동시에 인간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은 인간과 세계에 대립하지 않는다. 네 번째는 ④역사에 대한 회고적 사유 방식으로의 변화이다. 헤겔이 초기에 추구했던 재생과 통합은 정치·종교적 개혁에 의해 의식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어떤 것이었으나, 후기에 이르러 인간 운명의 완성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 어떤 것이 되었다. 또한 그러한 완성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이루어진 이후에 사람들의 역할이 완벽하게 이해될 수 있다. 이것이 헤겔의 '이성의 간지List der Vernunft' 사상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어서야 날갯짓을 한다."(143, 법철학 서문) 즉 인간은 보다 큰 우주적 주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인데, 이 역사의 주체는 단순한 인간이 아닌 정신이다. 따라서 행해져야 하는 것은 역사의 제도적 번혁이 아니라[각주:4] "오히려 정신이 발전 과정에서 산출한 것을 의식하고, 그렇게 산출된 것과 인간 자신이 맺는 관계를 인식하는 것이다."(143) 이제 인간의 자기 실현은 정신의 자기 실현이 되었으며, 이것은 이성의 철학적 인식을 토대로 한다.

  1. 본문에서 다루는 헤겔의 수고는 <기독교의 실정성>(1795/1796)과 <기독교의 정신과 그 운명>(1798/1800)이다. 자세한 것은 110면 참고. [본문으로]
  2. 마치 불교의 가르침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모든 것을 자신이 열반에 오르기 위한 과정으로 볼 것을 당부하는 것과 유사하다. 부처는 그 자체로 신앙이 아니라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 해주는 과정이다. [본문으로]
  3. 그는 셸링의 영향을 받았지만, 셸링의 절대자를 "심연", 또는 "모든 소가 검게 보이는 무차별의 밤"으로 묘사한다.(133) [본문으로]
  4. 이것은 어차피 의도적으로 행해지고 완성될 수도 없으며, 완성되기 전에 이해될 수도 없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