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Grey 구락부 전말기



라울전



우상의 집

-명동 '아리사'라는 찻집에 드나드는 나, K선생, K선생의 위에 있는 그.

그는 북한의 항구도시 W 출신이며 육이오 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나나'를 탐독하여 자신이 짝사랑하는 이웃집 나나를 만들기에 이르렀는데 폭격에 그녀가 무너진 기둥에 가슴이 깔린 채로 죽어가는 걸 보고 도망나와 그녀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것, 그는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라는 것. 


9월의 달리아

달리아는 꽃 이름이다. 북으로 올라가는 길 왼편의 별장의 열린 대문에 흰 것과 붉은 것이 같이 피어 있다. 스물넷 쯤 된 군인, 별장에 들어섰다가 그 집의 여자와 남자를 죽이고 나와 귀순권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강물에 띄워 보낸다. 공산군 트럭에 타고 사라진 그는 반시간쯤 후에 동료들과 함께 진흙에 상반신을 틀어박고 죽어 있다.


수囚

"나는 사랑한다.

그뿐이다. 다른 건 아무것도 없다. 노랫가락마따나 지은 죄란 그밖에는 없다. 누구를 사랑하려고 했는가? 무엇을 사랑하려고 했는가? 그렇게 물으면 안 된다. 그건 아주 창피한 물음이다. 그런 말을 물으면 못쓴다. 중요한 건 내가 분명히 사랑하려고 했다는 사실 그 한 가지다. 참으로 중요한 얘기다. 그런 탓으로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111

갇혀 있고 창만 있다. 내 생활은 이렇게 풍성하고 즐겁다, 재미있다 등의 말을 반복적으로 한다. (정말 풍성하고 즐겁다면 이 말을 굳이 안 했을 것 같다.) 상상 속에서 어디든지 갈 수 있다는 나. 눈을 감으면 아내를 가진 나, 아내는 슬픈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애인은 간호부. (아마 정신병동에 갇혀 있는 것 같다.) "나는 무서워진다. 어떻게 할까. 그녀가 나를 고문하고 싶어 하는 심정도 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는 거다. 그렇지만 곤란하다. 우리는 그렇게 다정스레 걷지 않았는가. 내 아내도 사랑하니깐 그런 줄도 안다. 내 아내도 사랑하니깐 돌이 된 거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너의 자녀가 빵을 달라 하면 돌을 주겠느냐. 피이다. 예수님이 이것만은 잘못이다. 빵을 달라 할 때 돌을 주는 게 사랑이다.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133-4

137의 시를 볼 것. 

"나는 수인이다

벽이 있다

부딪쳐본다

누구냐 날 가둔 자가


나는 오뚝이다

나는 지쳤다

눕고 싶다

누워도 누워도

자꾸 일어난다

누구냐, 날 오뚝이로 만든 자가

(주치의가 다음과 같은 치료 방침을 노트에 적어놓았다)

벽이 있을 땐 조용히 뒤로 돌면된다

누울 수 없으면 선 채로 자라

이 녀석은

하늘을 나는 새

누워서 자는 오뚝이

그런 꿈을 꾼 모양이다" 137

갇혀있는 꼴이 꼭 이리저리 휩쓸리기만 하는 이명준이나 독고준 같다.

"7월의 한낮은 소리 날카롭게 금이 간다. 모두 이그러진다. 프리즘. 유리처럼 투명한 7월의 한낮은 두껍게 나를 싼다. 싼 채 균열한다. 파앙.

나는 갇혔다.[囚].

나는 창가로 뛰어간다. 7월달 햇빛에 이글이글 눈부신 철로와 나란히 기름진 국도가 바라보이고 국도에 직각으로 마주치는 좁은 길이 보인다. 이 병원에서 국도로 나가는 길이다. 나는 기다린다. 좀 있으면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란히 움직이는 아내와 그 남자의 어깨를. 그 길 위에. 언제나처럼." 140



7월의 아이들

학교, 구슬치기를 하는 3학년 반 아이들. 영양상태가 엉망인 한 아이와 다른 한 아이(패거리의 대장). 토관에 유리구슬을 가져오라는 대장. 그대로 하는 노란 아이. 노란 아이 이름은 철이다. 지난 4월엔 누나가 죽었다. 아버지는 병환으로 누워 있다. 

대장과 티격태격하다 벌을 받은 채로 잊혀진 두 아이는 비가 무섭게 내리는 늦은 시각 집으로 돌아가다 물이 크게 불어난 도랑을 건너게 된다. 철은 마지막 디딤돌로 뛰었다가 모로 넘어져 순식간에 아래쪽 토관 아가리로 휩쓸려 들어갔다. 토관은 이 자리 말고 땅에 드러난 곳이 없다... 굉장한 비다. 162



열하일기

고고학을 전공한 나, 루멀랜드에 도착. 

"루멀랜드에 대한 우리들 외국인의 그리워함이란, 거의 환장했다고나 하면 좋을, 그런 형편이었다. 견줄 데 없이 부드러운 날씨. 뚜렷한 사시사철. 맑게 트인 공기. 넘치는 햇빛. 그렇다. 햇빛의 나라. 그것이 루멀랜드다. 비너스의 눈동자. 꽃방석에 얹힌 청옥. 또 무어 또 무엇.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름을 가진 나라." 64

루멀랜드는 전후 한국을 말하는 것 같다. 국제구호연맹의 구호 물품, 폐허의 도시. 한국의 모습을 풍자하는 소설이다. 나파유의 식민 통치사를 펴내라는 권고에 대해 그 나라의 죄 없는 젊은이들은 그런 책이 나오면 괴로움에 시달릴 것이므로 문화적 침략이며 죄악이 된다며 지탄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전공과 관련하여 네 개의 화석에 관련된 일감을 얻었다. 게다가 분녀라는 여자와 사랑도 시작. 

 어느 날 갑자기 호텔로 찾아온 낯모를 사나이, 그를 경찰서로 데려간다. 현행범이라면서 24시간 안으로 루멀랜드를 떠나라고 한다. 음향 재생법으로 분석한 화석들의 소리 녹음 파일을 틀어준다. 아마도 농민봉기, 명성황후 시해, 일제강점기, 그리고 한국전쟁의 이념 갈등을 담고 있는 화석들. 

분녀를 찾아 자신이 떠나야 한다는 걸 알리려는데 분녀는 자살했다. 이북 사투리를 쓰는 남자(분녀의 전 애인)와 몸싸움을 하다 기절하고, 강제로 비행기에 태워져 루멀랜드를 떠나게 된다. 

"내가 20년 전 루멀랜드를 떠난 다음 해, 루멀랜드의 위대한 궁리꾼들과 노래꾼들과 과학자 그리고 무당들이 모여서,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실험을 했다. 열여섯 난, 아무 죄 없고(일설에 의하면 그는 장미꽃 모양의 심장을 가졌다고도 하지만 확실치 않다) 성한 소년의 한쪽 눈 속에 최루탄을 박아넣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실험이었다. 선禪의 방법을 써본 것이었다. 어느 나라들처럼 달을 쏘는 대신에, 사람의 넋을 쏜 것이다. 놀라운 익살이었다. 결과도 놀라웠다. 그 소년의 눈은 바로 신의 허파였던 것이다. 신은 캴캴캴깔깔깔 으하핫핫 형편없이 너털웃음을 웃기 시작했다. 결과는 뻔했다. 신의 허파의 맹렬한 움직임으로 말미암아, 땅이 쪼개지고, 뫼가 내려앉은 위로, 바닷물이 덮쳤다. 루멀랜드 온 나라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아버린 것이다. 루멀랜드는 이렇게 갔다. 풍문에 의하면 이 실험에는 내가 잘 아는 '민중을 사랑하는 암흑의 집 사랑의 방' 근무자들이 한몫 단단히 놀았다고도 하지만, 이 소문은 다짐할 길 없고, 머나먼 주변에 감도는 아지랑이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루멀랜드의 본ㅅ대 그것처럼." 224-5



금오신화

도당의 부름을 받아 간 도당 건물에서, 선전동무에게 남조선 간첩 특수임무를 제의받는 A. 평양 내무성에 간다. 각종 교육을 받고, 간첩으로 파견되어 임진강을 건너는데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시체의 상처에서 나오는 A의 넋, 자신의 시체를 바라보며 "그는 이제야, 그 시체가 얼마나 못났는가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멍청하니 학교를 다니다가, 길거리에 붘잡혀 의용군이 되고, 하필 간첩으로 월남하다가 이 꼴. 그 마디의 어느 하나에도 그의 뜻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인가." 255



웃음소리

바 하바나를 찾은 여성,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온 순자. 여자는 마담을 찾는다. 다시 바 하바나에서 일할 생각이다.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마담이 오고, 돈을 받는다. 죽을 장소를 찾아 P온천으로 향한다. 5월. 맞은편에 앉은 뚱뚱한 남자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던 사람인지 아는 듯하게 느껴져서 기분이 나쁘다.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자 살의를 느끼며 천천히 사과껍질을 벗긴다. 산속에 봐뒀던 자리를 찾아갔는데 남녀 한 쌍이 잔디에 누워 있다. "그녀는 풀석 주저앉았다. 바로 풀이 우거진 발밑에 주저앉은 것이었으나 사실은 하나의 떨어짐이었다. 그녀의 마음이 타고 있던 저울에서 저쪽 접시의 무게가 갑자기 옮겨지고 그녀의 마음은 허망하게 내려갔다. 그녀는 다시는 그쪽을 보지 않았다. 치마에 다닥다닥 붙은 가시가 돋힌 열매를 하나하나 옷의 올에서 뜯어내면서 줄곧 고개를 들지 않았다. 바람결에 여자의 짧은 웃음소리가 들린 듯했으나 그녀는 그래도 쳐다보지 않았다. (...) 얼마나 지났는지 아무튼 무척 오랜 시간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는 지친 느낌을 안고 그녀는 일어섰다. 빈터의 남녀는 여전히 누워 있다. 또 한 번 여자의 짤막한 웃음소리가 들린 듯싶었다. 그녀는 웃음소리에 쫓기듯이 자리를 떠 여관으로 돌아왔다." 267-8

다음날도 갔는데 그 남녀는 여전히 거기에 다정히 누워 있었다. 자신과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모습을 그 남녀에 넣어 보는 그녀.

그 다음날도 다시 갔는데 알고 보니 그 남녀는 죽은 지 한 일주일은 되었다고 한다.

일주일을 더 묵고 서울로 상경하는 여자. 사막의 사보텐 밑 남녀가 있는 풍경을 그려 본다. 남자는 모르는 얼굴이고 여자는 사보텐에 가려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여자의 웃음소리, 그것은 자신의 웃음소리였다.



국도의 끝

8월, 여섯 명의 손님이 탄 버스. 하나는 장사꾼, 둘은 신체검사 받은 청년, 둘은 두루마기 입은 시골 사람,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국민학교 교사. 미군 부대가 '폭발물 위험' 표지가 붙은 차들을 타고 한없이 지나간다. 다시 출발하는 버스. 이번에는 양색시 장례행렬을 만난다. "장례 행렬은 앞뒤로만 주춤주춤하는 것은 아니다. 좌우로도 비틀비틀하면서 도무지 한번 내디뎠다가는 두세 걸음을 물러나곤 하는데 행렬이 ─앞으로 나가려는 행렬이 아니라 길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광대놀음을 펼쳐놓은 형국이다." 279

미군부대를 상대하는 작은 마을에서 분홍 블라우스에 분홍 신을 구두를 신은 여자와 술에 취한, 군용 작업복을 입은 세 청년이 탄다. 그들은 여자를 성희롱하는데 교사를 제외한 버스의 모든 승객들이 그 희롱에 동조한다. 여자는 혼자 길 중간에서 내리고, 다른 버스를 타고 떠난다. 소설은 누나를 기다리는 소년의 모습을 그려주며 끝난다.



놀부뎐

실제 흥부전과 다른 이야기. 강남제비박씨가 아니라 남인 북인 정치싸움에 봉고파직된 양반이 집안보화를 은밀히 빼돌려 숨겨 묻어놓은 것을 흥부가 발견해 써버린 것. 놀부가 기겁해서 그걸 다시 묻어놓자고 하고 산에 올라갔다가 둘은 그 양반에게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오래전에 도망쳤던 노비인 부모님 몸값을 지불하는 등 돈을 계속 빼앗겨 빈털터리가 된다. 그렇게 옥살이하다 죽게 됨. "세상사람 들어보소 '흥부뎐' 자초지종이이러한데 야속할손 세상 인심이요 괘씸할손 광대글쟁이솜씨더라 있는말없는말에 꼬리를달아 원통한귀신을 매섭게몰아치고 웃으며짓밟더라ㅏ 세상일에 속에는 속이있고 곡절뒤에곡절인데 겉보고속보지않으니제가저를속이며 소경이제닭치고 동리굿에춤을춘다ㅏ 강남제비박씨받아 흥부가치부했다니 이아니기막힌가 어느세상에가난한놈 박씨물어다주는 복제비있다던가ㅏ 왜제비양제비가 너희를살리더냐 청제비노제비가 너희를살리더냐 제비좋아하네 제비를 기다리다 밭갈기를잊었으며 씨뿌리기잊었구나ㅏ 사람이못하는일 날짐승이 무슨소용이랴 너희들 병통이 골수에맺혔으니 이모두뉘탓인가 네탓네할애비탓이로다ㅏ" 302



정오

한 부대의 목공과 취사반장, 취사실의 묘사. 점심을 위해 요리한다. 튀어오르는 미꾸라지.



춘향뎐



귀성

차 시간 한 시간 전에 서로가 여기에 돌아올지를 시험하는 남녀. 운을 시험하며 각자의 내기의 시간을 가진다. 다시 다방에서 만난 둘. 

"그와 그녀의 이제부터의 시간은 결코 그 내기를 입 밖에 내기 전의 그들의 시간과는 다시는 같지 못하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옛날에 언젠가, 지금처럼 나란히, 꼭 이런 거리를, 이맘때, 이런 심사를 안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른 뒤끝에 그녀와 걸어간 적이 있다는 분명한 착각인 회상이 떠올랐다. 그러자 그는 소스라쳐 놀랐다. 그, 풍문으로만 들어온 늙디늙은 시간 속에 귀성해 있는 자기를 발견한 탓이었다. 한 신화가 다소곳이, 미안한 듯이, 발끝에만 눈을 주며, 그의 팔을 붙잡고, 그와 나란히 걷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저 늙은 '이브'였다." 351-2



만가 




오생근은 그의 문학을 '창의 문학'이라고 말한다. "서구적인 전통과 질서에 대한 동경을 지니면서 현실의 자기 위상을 파악하려는 최인훈의 초기 작품들 중에 「그레이Grey 구락부 전말기」는 그의 정신적 편향을 보여주는 데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이 작품 속에는 그의 문학의 한 상징성을 보여주는 창에 대한 이론이 등장한다. 음악과 대화가 있으며 지기들이 은밀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곳, 즉 최인훈적인 개념에서의 밀실을 찾던 젊은이들은 어느 집 2층을 빌려 그곳에서 모임을 갖고 그 모임을 '그레이 구락부'라고 부르는데, 그곳에는 물론 커다란 창이 있다." 369 믿음의 세계와 창의 문학. 오생근.

최인훈의 작중인물들은 '창' 타입의 인간형이다. 그가 정의하는 창 타입의 인간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들은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라보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 바라보는 행위는 무기력하고 정적인 행위가 아니라 "굶주린 듯 지켜봄"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동적이며 적극적인 정신의 행위이다. (...) 둘째, 외로울 때 창가에 서는 사람은 외로울 때 벽에 기대는 사람보다 개방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창밖의 세계와 만나기를 열망하며 어두운 밀실 속에 안주하기를 거부한다. (...) 셋째, 창 앞에 서는 사람이 외로움을 벗어나려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근본적으로 외로운 사람이라는 점이다. (...) 그가 아무리 정신적 고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투명한 창 속에 갇혀 있는 그의 몸짓은 타인에게 쉽사리 이해되지 안흔다. 그의 우울한 표정, 그의 기쁜 웃음, 그의 내면의 공허, 그것들의 의미는 창 속에 차단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창을 통해서 타인과의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은 그 의도가 쉽게 실현되지 않음으로써 이중적으로 좌절과 내면의 파탄을 겪는다." 370-1


창 안에서 창을 통해 풍경들을 관찰하고 냉정하게 묘사한다. "다시 말해서 작가로서의 작중인물에 대한 애정은 어느 편에 치우치지 않는 냉졍함이라는 것이다." 372


"최인훈은 현실을 기술하는 데 있어서 창의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 현실 '안'에서의 관점보다는 현실 '밖'에서의 관점을 선택하고 있다. 현실의 모든 내적인 모순과 불합리는 '밖'에서 보려는 노력에 의해 냉정하게 파악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여기서 '루멀랜드'(열하일기)란 그가 자주 말하는 '풍문'의 고장이다. 다시 말해서, 그곳은 전통이 단절된 상황 속에 모든 갖가지 풍문이 지배하는 우리의 현실을 가리킨다." 376



"'보다'라는 말이 '알다'라는 말과 맺고 있는 의미론적 친연성, 그리고 근대 이후 과학적 이성이 오감 중에서도 특별히 시각에 특권을 부여하게 되는 과정 등에 대한 상론은 피하더라도, 최인훈에게 눈은 곧 세상으로 난 창이자, 세계인식의 거의 유일한 수단처럼 보인다. 그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본다.' 그리고 보는 행위는 그들에게 곧 인식하고 사유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기도 하다." 383-4 김형중, 창형 인간과 욕망의 삼각형.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전형적인 모방 욕망의 삼각형. (그레이 그락부, 라울전, 웃음소리 등등)

라울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으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예수가 그임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결론짓기를 유보한다. 이러한 시각적 증명의 요청은 그가 어디까지나 인간적이며, 전형적인 창의 인간임을 나타낸다. 

"탈을 벗겟다는 현의 결심은 모방 욕망이 만들어낸 우상으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의지의 표현에 틀림이 없다. 「우상의 집」의 '나'가 한떄 자신의 우상이었던 '그'의 집이 정신병원이었따는 사실을 확인하고 느꼈던 자기 환멸도, 라울의 비참한 죽음으로 끝맺는 「라울전」의 결말도, 내내 귀에 들렸던 여자의 웃음소리가 바로 자신의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 앞에서 황급히 되돌아서는 「웃음소리」의 여주인공이 깨달은 바도 이와 대동소이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모방 욕망의 허위를 깨달은 자들, 그리고 그것을 어렵게 극복해낸 자들이다." 394


----나는 이것들을 읽을 때 그 인물들이 자신들의 모방 욕망의 허위를 깨닫고 극복했다 생각하지 않았다. 허위를 깨달았을진 몰라도 극복하지는 못한다. 왜냐면 그 허위를 모방하려고 시도했던 과거의 자기 자신은 없앨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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