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다리


1969년 겨울,

삽화가 이준구, 소설가 한명기. (바람의 마음 연재 중. 주인공이름은 정동진.) 명동의 한 바 '홍콩'에서. 싸락눈 내리는 겨울. 

"준구는 원산이라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많은 뿌리를 생각해보았다. 그 속에는 준구 자기에게 뻗친 뿌리도 있었다. 그것은 지금으로서는 그의 머릿속의 기억 세포에만 이어진 뿌리였지만 뿌리임에는 틀림없었다. 실지로 오갈 수 없기 때문에 그 뿌리는 준구의 기억 세포 속에서 뿌리혹박테리아처럼 무성하게 부풀어 있었다. 그리움이란 양분을 빨아먹으면서 그 박테리아는 이십 년 동안 가닥에 가닥이 얽혀 덩굴진 숲을 이루고 있었다." 16-7

같이 원산에서 피난배를 탔던 한동순 선생의 부탁 편지. 딸을 데려다 보호해 달라는 것.

한명기는 회색인에서의 학과 비슷한 것 같음. 

갠 밤 하늘에서 여자 다리를 보는 준구. (구보 씨가 하늘에서 기괴한 것을 보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보도에 내려서서 조금 걸어가다가 준구는 또 '그 착각'을 일으켰다. 그것은 착각이라기보다 '허깨비'라고 하는 편이 옳았다. 갠 밤 하늘에 여자의 다리 하나가 오늘도 걸려 있다. 허벅다리 아래만 뚝 잘린 다리다." 27

"아무리 뒤로 돌아가서 절단면을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 절단면은 자기 그림자를 밟으려고 할 때처럼 시선에서 벗어난다. 끊어진 다리. 그런데 끊어진 다리가 없다.

얼마 전에 준구는 밤하늘에 떠 있는 이 다리를 발견했다. 그러자 낮에도 보이기 시작했다. 언젠가 지방에 갔을 때는 서울 쪽 하늘에 멀리 그러나 뚜렷하게 보였다. (..) 그것은 마네킹의 다리가 아니라 분명히 살아 있는 사람의 다리였다. 준구는 여러 번 보아서 그런지 이제는 부자연스럽지도 않다." 28


"'홍콩'에서 나와 그들과 헤어졌다. 오늘도 하늘에는 다리가 있다. 겨울 하늘 높이, 다리는 하늘을 밟고 있다. 그리고 긴 허벅다리에 OK라는 글씨가 보인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그 다리에 무슨 다른 것이 붙어 있기는. 글씨는 새끼를 치더니 은단처럼 작은 OK들이 됐다. 다리가 온통 그 OK의 낟알이 되더니, OK들은 스멀스멀 움직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은빛의 구더기들처럼 반짝이면서. 곡식 낟알로 빚어놓은 조각처럼." 46


집에 와 있는 성희.



"저 지붕 밑에 있는 많은 삶. 그 집들처럼 알 수 없는 남들. 성희. 제 아버지한테조차 알 수 없는 '여자'가 된 성희. 알 수 없는? 사람이란 그렇게 알 수 없는 무엇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다. 내가 보지 않은 자리에서 그가 무엇을 하는가를 알 수 없다. 두 번 만날 기약이 없을 때 또는 구태여 두 번 만날 필요도 없을 때─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에 대해서 흉기가 된다. 사랑. 물론 있다. 그러나 흉기들의 사랑이다." 65


"준구는 멍한 눈으로 한명기─친구라는 등급의 이 흉기를 바라보았다." 69


한동순 선생 사망. 


***74-5, "(구호)상자 속에서는 별의별 것이 다 나온다. 빌딩도 나온다. 대포도 나온다. 캔버스도 나온다. 실버텍스도 나온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문명의 슬픔. 트로이의 목마처럼. 문명의 무서움. 슬프고 무서운 것을 즐겁고 편리한 줄밖에 모르면서 사는 피난민촌. 거대한 피난민촌. 삼천만 명의 피난민. 1950년대의 피난민. 1960년대의 피난민. 1970년대의 피난민. 슬픔과 무서움을 모르는 날까지, 사랑을 모르는 날까지는 7000년대라도 피난민이다." 75


김상현.


겉도는 준구...의 이미지. 성희를 계속 떠올리는 것은 그녀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렇다면 뭘까/


부산에 내려간 준구.


하늘에 걸린 다리처럼, 하늘과 연결이 되지 않는, 준구는 그것을 그릴 수 없다. 




-----두만강

1943년, H읍, 두만강변에 있는 소도시. 조선인 일본인 여진족 중국인 러시아인 캐나다인 등등이 모여 산다. 현경선, 한동철.(한성철의 동생)

양관 2층의 방 둘은 경선이가, 아래층은 현 씨가 응접실과 서재로 사용한다. 옥순, 열여섯 살. 현 씨네 집에 드난살이 하는 소녀. 

한성철을 좋아하는 옥순. 그러나 현경선도 한성철을 좋아한다는 것을 감으로 알고, 자신의 처지에 한숨만 쉰다. 성철이도 경선을 좋아하는데, 친구 자리마저 잃을까봐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다. 

구마모토 의전을 나온 한 선생은 일본식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일본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의 처 송 씨. 한 선생에게 애정표현을 하는데 받아들여지질 않는다.

동철은 여덟 살때 축제에서 만난 마리꼬짱을 좋아한다. 아버지는 H읍의 석산은행 지점장, 마리꼬는 언니(기미에, 20살)도 있다.


현도영 씨, 친구 혁명가 고진형 생각을 하며 조금 답답해한다. 이제는 판도를 바꿀 수 없다. 일본은 황금기를 맞고 있다.

현도영 씨는 만주각의 봉란이라는 기생을 만나고 있다.

겨울. 열아홉인 경선. 성철은 서울에 공부하러 감. 


"그뿐만 아니다. 독립운동가들은 이 강을 넘어 지치고 잠든 백성에게 민족의 정기를 불어넣으려 온다.

이 강은 H의 상징이요, 어머니다.

어머니 두만강.

이 고장 사람이라는 지방 의식은 두만강을 같이 가졌다는 것으로 뚜렷해진다." 194  


전학생 만길이.


다나까 헌병은 식민지의 아가씨 경선을 짝사랑하고 있다. 마리꼬의 언니 기미에도 마음에 두고 있는 중. 그러나 경선을 더 좋아하고 있음.


요시노 선생(순옥이)


자기 자신을 보잘것없는 시골 계집애로 보는 경선, 열등감이 뿌리내린다. 233~



1944년.


"이런 형편이었으므로 H읍 사람들의 시국에 대한 피동적인 태도는 결코 이방 민족에 대한 의식적 불만의 표현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면 무엇일까? 그것은 무서운 게으름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무서운 게으름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우리들은 우리 운명의 주인공이 아니라고 오랜 세월 눌리면서 체념한 사람들의 무기력의 표현이다." 300

""그 두 사람 말고는 이렇게 많은 관중 속에서도 일본 사람은 더는 없었다. 일본 사람들은 말로야 어떻든 이런 자리를 같이할 만치 조선 사람들과 어울리는 살림을 해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기야 긴말할 것 없고 일본 애들은 다른 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그래 일인의 모임에는 조선 사람은 보이지 않고 조선 사람의 모임에는 일인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조선 사람은 조선 사람대로 일인은 일인대로 몰교섭으로 살아나갔다. 애써 맞서지 않는 반면에 적극적으로 동화하려는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는 H읍 사람들이었다.

  오늘 저녁 이 즐거운 모임에도 일인이라곤 아마 동철의 동무인 마리꼬와 그 언니쯤일 것이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서 쓰이는 말은 일본말이다.

1944년 1월 A소학교에는 아무튼 선량하고 헤픈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높았다." 305






------비평

"그의 등장인물들이 뜨내기라는 사실과 관련하여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대개의 경우 구체적인 생활의 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레이구락부 전말기」의 등장인물들은 '현실과의 쓸데없는 부대낌'을 피하기 위하여 그들만의 소외된 분위기에 젖을 수 있는 '현자의 모임'을 갖는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아버지의 옛날 친구 집에 얹혀 지내면서 돈의 필요성을 의식해볼 기회를 갖지 못한 위인이다. LST를 타고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따라지'인 “하늘의 다리」의 주인공 김준구에 관하여 작자는 이런 진술을 한다. "그는 원래 이 도시에서 자기는 남이고 이 도시에는 자기를 빼놓은 남들의 큰 집단이 자신 있게 살고 있다는 짐작으로 살아왔다"고." 320-1 천이두, 「추억과 현실의 환상」, 1978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민감한 존재들, 그들이 곧 난민들이고 이방인들, 경계인들이다. 바로 경선과 동철처럼 세상과 대결하고자 하는 자아의 의지로 인해 스스로 주변인이 되어버리는 존재들 말이다. 우리는 위에서 드러나 있는 현실 부정의 의지와 그것을 초래한 초월적인 욕망의 추구에서 이후 피난민 의식의 형태로 변주될 어떤 의식의 투명한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350 손정수, 「환상으로 존재하는 삶」,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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