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고고학 필름이라고 말하는 도입부의 설명, 7면.


회색인에서 나왔던 독고준과 이유정이 그대로 등장한다. 

"사실 퍽 움직였는데도 계단은 그의 앞에서 물러나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묘한 안도감을 가지는 자기 마음을 본다. 이 계단이, 이 규칙 바른 간격이 무한히 이어진다면 나는 이것만 자꾸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그밖에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그에게는 구원처럼 생각되었던 것이다." 9


수동적이고 싶어 하는 독고준의 심리.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심리와 같지 않을까.


""하, 그 양반 책임 안 져도 된다니깐."

"책임이라뇨?"

"우리들한테 대해서 말요."

"아닙니다. 당신들한테 대한 책임을 두려워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뭐요?"

"나 자신에 대한 책임 때문이지요."

"나 자신에 대한 책임? 히야 요것 봐라. 세상 났다 그것 한 번 희한한 말이구료. 여보 들었소, 응?"" 24


일본은 패망했으나 이미 잘 길들여진 반도의 백성들은 "그동안 제국의 반도 경영에서 과시한 막강한 권위와 그에 인한 반도인의 가슴 깊이 새겨진 신뢰의 염과 아울러 방향감각을 상실한 반도인의 얼빠진 무결단에서 온 것으로서 오랜 통치의 산 결실"(35)로 인해 무력해졌고, 일본인들은 여기에서 희망을 본다.


"그들은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난날의 그리웠던 발길질과 뺨 맞기, 바가야로와 센징, 하던 그 그리운 낱말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되게 굴던 서방을 여자는 못 잊는 것입니다. 오입깨나 한 사람이면 이 진리는 다 아는 일일 것입니다." 37



논개가 왜 나오고, 논개랑 왜 독고준이 결혼을 해야 하며, 그게 왜 석방 조건이 되는지????

조선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논개를 결국 외면하는 독고준을 통해 책임지지 않으려는/죄책감을 느끼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논개여, 나를 용서해주세요. 나는 하잘것없는 놈입니다. 난 아무것도 아닙니다. 난 아무 힘도 없습니다. 난 여기 오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닙니다. 저는 한 번도 당신의 가슴을 태우는 그런 높은 뜻을 지녀본 적이 없습니다. 저는 지쳤습니다. 저는 뭔지 모르고 사는 티끌 같은, 파리 같은, 하루살이 같은 하잘것없는, 아주 하잘것없는 존잽니다. 당신은 나에게는 너무 높습니다. (...)"

"이 자식아, 너 같은 비국민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망한 거야, 알겠나? 민족의 성자가 구원을 청하는데 무슨 군소리야. 개인을 버리고 민족에 봉사하라는데 무슨 딴소리야.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찾으라 이 말이야. 모르겠나."

독고준은 헌병하고는 다투고 싶지 않았다. 헌병의 그 말에 대꾸를 하면 논개에게 욕을 주는 형국이 될 것이어서 그는 잠자코 있었다. 여름, 나의 여름을 양보할 순 없다. 그것이 무언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그 여름 속에 모든 게 숨겨져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모든 것은 그 다음이다. 논개여 당신까지도." 50-1



1) 배의 사람들 이야기, 

2) 호랑이 이야기.

"그는 자기가 가는곳을 알지를 못하였다. 그러나 바위에 이끼가 끼듯이 호랑이가 길을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호랑이는 한 번 뛰어 내를 넘고, 두 번 뛰어 언덕을 넘으면서 앞으로앞으로 달려갔다. (...) 그래도 지칠 줄 모르는 호랑이는 스스로도 모르는 그리움 때문에 앞으로만 달려간다." 61


3) 65-8난데없는 서글픔, 우리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들에 대해 나열한다.

4) 기계 이야기, "몇 년인가 기계는 그런 생활을 하였다. 그러는 동안에 기계는 자기가 누구였던지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날이면 날마다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것은 자기가 누구였던가를 알아내지 못하는 데서 오는 괴로움이었다. 아무리 애써보아도 한 번 지워진 기억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68

5) 미시시피 강변의 담소아와 학빈이라는 두 아이의 이야기. 둘 다 이름과 정반대의 성격. 무리하게 좇은 달걀귀신을 본 후에 소심해진 담소아와 여자 잘 만나 학빈을 면한 학빈.

논개의 장한몽, "독고준은 논개의 잘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서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논개의 심정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괴로웠다. 이상적인 나의 처를 돈과 바꾸어 외국 유학하려는 내가 아니라. 독고준은 일어서 걸어갔다.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울적했다." 72


목재더미를 스쳐지나가는데 저 멀리에 오락가락하며 독고준을 기다리는 듯한 기차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거기로 가려고 해도 재목 더미가 끝이 나지 않는다. 여기서 같이 지내자는 역장과 떠나야 한다는 독고준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중립국을 가겠다고 고집피우는 모습이 겹쳐지는 것 같기도 하다..


"아까 말했듯이 나는 지금으로서는 일체 상부와의 접촉을 끊고 이 노선을 운행하고 있네. 그러니까 당역은 독립을 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히 외람된 이야기는 아니야. 알겠나?" 91


떠나겠다고 그렇게 용을 쓰고 결국 목재더미 밑에 있던 열차를 타고 길을 나서는데,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제일 소중한 것을 두고 길을 떠나온 사람처럼 이 여행이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107 왜 막상 떠나게 됐음에도 찝찝한 기분으로 떠나야 하는가?


기차에서 나오는 방송, 상해임시정부의 방송 이후에 그를 먹어버리고 방송하는 혁명위원회. 피를 원한다.?



"그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한 여름의 연선의 모습이 뒤로뒤로 지나간다. 기차는 가고 있따. 기차가 가고 있는 동안은 내게는 책임이 없다,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119


석왕사라는 역.



""자, 일어나세요."

"네"

하고 독고준은 그 말을 따르면서 몹시 막막했다. 까닭인즉, 지금 이들의 명에 따르는 것이 아까보다 그럴 만한 사정을 알아서라기보다도, 약간 버텨본 연후라는 데서 신념을 가진 행동을 할 때 같은 착각에 말려들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더 버티어서 어떻게 하자는 작정도 없기 때문에 그는 일어선 것을 후회한달 것까지는 없었다." 124


128. 죄수의 입을 빌려 '민족성'이야기를 시작한다.

"" (...) 본인은 오랜 연구를 통하여 민족성이라는 개념이, 아무것도 풀이하지 못하는 불모의 개념이며 요화이며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러한 방황 끝에 문화형이라는 개념에 도달했을 때 본인은 비로소 현실의 지평선을 발견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생각하는 형식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본인이 말하는 문화형이란 이 '생각하는 방식'을 뜻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국민이 실패를 하였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뛰어난 '생각하는 방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130-1


이순신의 이야기, ""자, 이순신의 생각하는 방식을 보셨죠? 그는 왜 본토 상륙을 전혀 고려에도 넣지 않고 있습니다. 그에게 힘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용기·총명·높은 덕성을 가지고도 오늘날 필부라도 한 번 생각함 직한 일을 생각지 못한 것입니다. 그의 국제 정치감각은 왜란을 가리켜 풍신수길의 견식 부족이요, 필부의 만용으로 보게 합니다. 그는 혁명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선왕지도가 하나뿐인데, 하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왕권정치·봉건제도 속에서 이씨를 이씨로 바꾼다는 건 아무 뜻도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순신이 '사회계약론'이나 '자본론'을 발명치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의 처신은 전혀 옳습니다. 체제 내에서는 전혀 논리적이었습니다. 체제란 동양의 현 국경이 합리적이며, 여기서 병사를 일으키는 것은 난동이며, 정치제도는 천지개벽 이래 선왕지도가 모벙이라는 생각 방식이 상식으로, 따라서 문화적 약속으로 통하고 있는 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 139-40


역장- 오공, 키가 큰 검차수- 팔계(오줌을 싸는데 독고준의 바짓가랑이 속에서 뜨뜻하게 주르르 흐른다...), 키가 작은 검차수- 오정?


"엔진 소리. 은은한. 저 여름의 소리. 저 소리는 내가 어디서 들은 소릴까. 모든 것은 내가 저 소리의 뜻을 알아낼 때 분명해진다. 그것만은 나는 알고 있다. 어떻게? 어떻게 그것을 아는가? 그것은 나도 모른다. 그러나 알고 있다. 그것은 분명하다. (...) 여기서 빨리 빠져나가야 할 텐데.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당장 급한 일이다. 아무도 사람이 없구나. 여기서 빠져나가야 할 텐데. 여기는 어딘가? 석왕사라니. 석왕사, 무슨 뜻일까. 무슨 뜻이든 빠져나가야 한다. (...)나는 오랫동안 꿈꾸었지. 이런 데서,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이렇게 앉아 있고 싶다는 바람. 비도 눈도 오지 않고 이렇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처지를. 그런데도 나는 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것일까? (...) 내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을 저 소리는 말해주었다. 나는 가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든다. 아무튼 여기를 빠져나가야 하겠는데." 150-1


떠나는 독고준에게는 잘못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죄책감을 느끼고, 미안해하며, 간신히 간신히 청을 뿌리치고 있는 것이다...


"독고준은 고달팠다. 이렇게 머리를 강철의 진동에 맡기고 이대로 한없이 가고 싶었다. 어디로 가지 않아도 좋고 그저 가기만 하였으면 나는 그만이다,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167-8  나는 어쨌든 뭔가 하려고 했어! 하는 자기변명의 일종으로 보임.


이광수와 대화하는 헌병, ""선생님, 그건 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결혼이 원래 운수 노름인데 그야 고문 패스, 네, 이 고문 패스할 때의 이 어감이란 참 기막히지 않습니까? 고문 패스, 이렇게 가만히 외워보세요. 한국의 근세사, 식민지 주민의 신화가 이 한마디에 얼마나 은은하게 어려 있나 말씀입니다. 또 딴 얘기를 했군요. 뭐 그리 딴 얘기도 아닙니다만, 아무튼 고문 패스, 고문 패스, 아이구 고문 패스, 이게 웬일입니까? 멈출 수가 없군요. 고문 패스 아이구 고문 패스, 그만 패스, 고문 패스, 이거 야단 고문 패스......" (...) "아무튼 이 고문 패스가 문젭니다. 종교도 잊어버리고, 문화도 잃어버리고 그렇다고 돈 버는 것도 어렵고 문벌도 소용없이 된 조선 사람들이란 말입니다. 돈 없고 문벌 없고 재주밖에는 없는 사람이 고등 문관 시험에 패스하는 것 말고 삶을 이겨내는 길이 또 달리 뭐가 있겠느냔 말입니다. 고문 패스, 그렇습니다."" 178


오늘날과 별반 달라지지 않은. 가장 위에 일본의 잔재로 남아 있는 서울대는 수능 입시제도의 궁극적 목표로 군림하고, 서울대에 들어가면 금의환향할 줄 알았으나 그것도 아니고, 취업을 잘 하면 또 그럴 줄 알았으나 그것도 아니고.. 금의환향이 없어진 시대. 고문 패스가 주는 유일한 버팀목은 안정성 뿐인가..


이광수의 흙에 대한 사설을 길게 늘어놓는 헌병의 입을 빌려 최인훈이 하고 싶었던 말은..


""(...) 아시아는 오랜 동안 민족 국가의 분립이 안정돼 있던 지역이오. 제 땅에 제 사람이 살거니 하고 살아왔단 말이오. 그렇게 수천수백여 년을 살았다고 하면 남의 땅에 가서 제 땅 만든다는 것이 엄두도 안 나는 자연스런 이치라는 것쯤 당연한 일이 아니오. 여기서부터 아시아의 치욕이 시작됐단 말이오. 입속으로 가만히 중얼거려보시오. 식민지. 원주민. 원주민은 다 무어야. 어디에 비겨서 어떻게 원주민이란 말이오. 침략자들이 우리를 부른 명칭이란 말이오. 아시아 전체가 노예가 되었단 말이오. 그들은 언필칭 아시아를 개화시켰다는 거요. 근대화시켰다는 거요. 이런 가증스러운 이론이 어디 있소? 아시아의 개화는 그들 침략의 결과지, 목적은 아니었단 말이오. (...)"" 197


""당신은 이광수 선생을 모시고 여기 남겠지요?"

독고준은 머뭇거렸다. 헌병은 또,

"안 그렇소?"

하고 말한다. 위협할 셈인지 허리에 찬 칼을 철커덕거린다.

"아니 저는......"

독고준은 머뭇거렸다.

"아니라니?"" 209


어느 가늘날 잠에서 깨어났더니 구렁이가 되어 있는 독고준, 동생 철이와 누이 숙이. 자신을 버리고 떠나자는 이야기를 숙에게 하는 철이의 이야기를 엿듣고 나서 차차 게을러지는 독고준. 자기 방에서 또아리를 틀고 생각에 잠기는 일이 많아졌다... 고향에서의 일이 조금씩 생각이 나는 독고준. 소집이 있어 학교로 가는 소년단원, 그를 뜯어 말리는 역장,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정신을 잃은 어린 독고준, 무언가 두드리는 소리에 다시 정신을 차리자 숙직실 같은 곳에 도시락통을 베고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말리는 역장, 이 모든 것들이 그 여름의 기억이 왜곡되어 나타나는 상들인 것으로 보인다.


"또아리를 틀고 엎드려 있는 그의 머리는 더욱 맑아지고 무럭무럭 새살이 돋아나듯 그는 지난날의 기억들을 되새겨가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인생을 망쳐버린 그 여름날을 생각하였따. 그러자 그는 그 기억들의 맨 끝자리에 떠오르는 얼굴을 보는 것이었다. 깊은 밤에 비행기 지나는 소리가 우렁우렁 들려오면 그는 그 여름날 철로 위에 들어서는 것이었따. 역장은 그를 말리고 있었다. 그는 숙직실에 걸린 발 너머로 기관차에 붙어 있는 그들을 보는 것이었다. 여름 햇볓에 반짝이는 두 가닥 레일 사이로 침목을 밟으며 그는 걸어가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 달려가고 있었다. 논개는 남강물 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촛불을 켜놓은 방과 후의 교실에서 그는 자아비판을 하고 있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손차가 달려온다. 구더기집이 된 죽은 개가 풀밭을 헤치고 달려가고 있었다. 그는 죽은 개를 집에 데리고 갈 수는 없었다. 사람이 없는 텅 빈 도시는 그를 취하게 했다. 그는 뜻 없이 거리를 헤맨다. 그는 소부르주아이고 책과 현실을 혼동하는 아이였지만 소년단 지도원에게 다시는 싫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폭탄이 쏟아지는 거리로 수십 리를 걸어온 용감한 소년이었다. 그는 사람이 없는 도시가 좋았다. 이 거리에는 그가 알지 못하는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고, 그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도시는 완전했다. 도시와 그는 지금 틈새 없이 어울려 붙어 있었다." 235-6


-그에게 있어 여름날은 자신을 망쳐버린 중요한 사건이다. 그는 이 기억 때문에 계속해서 길을 떠나야만 하며, 안일하게 주저앉는 데에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그 길 끝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 채로 어쨌든 앞으로 앞으로 가는 것이다, 자아비판 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아비판을 당하는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가 길을 나서게 된 것도 역시 따라서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는 머뭇거릴 권리가 있다. 죄가 없다고 외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정말인가? 정말로 죄가 없는가? 머뭇거림을 합리화할 수 있는가?)


240 떨어진 노트의 내용들 다시 한 번 볼것. 

"구름을 타고 구만리의 굉장한 비행을 했다고 생각한 것이 부처의 손바닥에서 아장거린 걸음마였다. '손오공' 형의 이야기. 242

"곧, 그렇다면 '나'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것이다. (...) 우리 경험으로 보면 '나'의 뒤에는 또 하나의 '나'가 차디차게 도사리고 앉아 있다. 그 나를 붙잡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것을 혹은 파토스라니 주체성으로 파악하려 한다. 혹은 삶이니 본능이니 하는 움직임으로 보려는 생각이 매력적인 사상으로 번번이 주장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파악의 불가성을 운동 개념으로 얼버무리는 데 지나지 않는다." 243-4


사람과 사람을 잇는 탄력점 P에 대한 설명, 이 P는 이데아, 로고스, 길, 신, 절대정신, 물자체, 일자 등등의 이름으로 (깊고 옅음의 차이는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같다. "나와 이들 사상가와 근본에서 다른 데는 이들 선배들은 다소간에 정신에 우위를 주고 그들 실재가 결국 어떤 의미에서 '정신적'인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 정신이란 안개 같은 것을 물체로서 확인하고, 제3공간의 찢어진 '틈'을 참가시켜 '나'란 영원히 나의 소유일 수 없으며 '나는 신의 사물'임을 분명히 하려는 점이다. 248


"무도회란, 추는 자[外空間]와 춰지는 자[內空間]와 보는 자[彈力點]가 어울린 슬픈 놀이이다." 256


"세계는 이미 만들어졌다.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져가는 것, 그것이 삶이다. 창조적 행위란 어떻게 잘 만듦을 당해가느냐는 사실의 자기 좋을 대로의 표현이다. '나'가 있다는 것은 저 '눈'이 나의 움직임을 보고 있다는 말이다. 그 탄력점이 '나'를 통일시키는 것이다. 안팎 세계의 어느 만한 부분을 그 눈은 보아준다. 그러면 그 시야 속에 든 두 세계의 부분은 서로 친근감을 가지고 각기 자기 몸, 자기 마음이라는 결합 의식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자기 의식이다. 탄력점으로 움직여가는 질량의 흐름, 그것이 '나'다." 259


"『서유기』는 위대한 책이다. 춤, 이 가슴 미어지는 몸짓. 우리는 관람석에 앉아서 무대를 바라보는 신세가 아니다. 우리가 관객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실수가 생긴다. 관객은 신이다. 그가 정당하게 그것을 손에 넣었는가 어쩐가를 따지는 것은 바보다. 현실로 우리가 댄서이고 그녀가 귀부인인 바에는." 262


독고준이 W시로 들어가고 나서, 두 종류의 방송이 번갈아가며 독고준을 좇아 나온다. 그를 간첩으로 몰아세우는 방송과 그를 환자로 취급하는 방송.
"오늘날 과학은 이미 어느 계급, 어느 국가에도 봉사할 의무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만일 봉사할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이성'에게만입니다. 왜냐하면 이성이야말로 영원한 계급, 영원한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은 실재하는 사회 세력이 아닙니다. 이성은 인류의 경험이 오랜 노력 끝에 창조해낸 방법적 허구입니다. 그것은 현실의 사회 집단의 정치적 이해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킨 인류 정신의 승리인 것입니다." 290


여러 방송을 더 듣고 나서 , 법정으로 장면이 바뀐다. 법정은 옛날의 교실이고, 검차원은 소년단 지도원 선생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의 친구들이었던 소년단 간부들이다. 결국 어릴 적의 트라우마를 되새김질하는 내용이었던 것...


소년단 지도원 선생과 논쟁을 벌이는 독고준. 비로소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명확한 생각을 이야기한다. 머뭇거리지도 않는다. 


" "또한, 그는 본직의 추궁에 대하여 인민의 적인가 벗인가를 명확히 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역사의 본질에 대하여 반역하고 있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근느 역사에 있어서는 어느 한쪽을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그는 행동으로써 인민에 적대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명학히 선언하기를 꺼려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그는 인민에 대하여 더할 수 없이 큰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인민이 자기를 박해하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는 역사에 참여하려 하지 않고 역사더러 참아달라고 사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편안히 앉아서 역사를 계산할 때까지 그 답이 나올 때까지 역사는 움직이지 말고 자기 곁에 앉아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역사를 인격으로 대하지 않고 자기가 채집한 표본쯤으로 생각하는 미친 태돕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태도는 미쳐 있는 것입니다. 제국주의의 '단말마'적인 발악적 이데올로기의 광상곡에 그는 미쳐 있는 것입니다. 그 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그는 가장 악질적인 '헤겔'주의적 스파이인 것입니다. 그는 잿빛 감도는 땅거미 지는 무렵에만 행동하겠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대차대조가 모두 끝나고 땅 짚고 헤엄칠 때에만 움직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가장 확실한 모험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웃기는 작자를 보십시오. 그것도 개명한 인간 사회에서는 그와 같은 모순의 태도를 방법적으로 어느 특정의 집단에 허용하는 약속이며 그것은 승려와 과학자와 예술가라는 것입니다. 이 엉큼한 중놈을 보십시오. 이 얼치기 과학자를 좀 보십시오. 이 서푼짜리 예술가를 좀 보십시오. 마땅히 살신성인하고, 객관에 겸손하고, 인생을 사랑해야 할 처지에 자기에 집착해서 앙탈하고, 환상을 좇으며, 인생을 증오하고 있는 이 괴물을 좀 보십시오. 그렇게 하고서도 모자라서 그는 이곳까지 잠입하여 그의 마지막 공격을, 공화국에 대한 마지막 공격을 가하려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본직은 독고준 동무에게 종신 징역을 구형합니다."" 332-3


간호원 석순옥. 


""현 세계에서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노동의, 같은 수준의 '기술' 형태 위에서의 대립이며 봉건제도와 자본제도와의 사이에 있었던 이질의 격차에서 대립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같은 노동 기술 수준 위에서의 이데올로기의 우열 주장은 필경 관념론이라는 것, 그것은 순수 사변적으로 우열이 없는 달걀과 닭의 말씨름이며 그 까닭은 존재는 그 자차신 모순의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므로 빵은 있으나 자유가 없고 자유는 있으나 빵이 없다는 가순환은 피할 수 없다는 것, (...)"" 337

 즉 남북의 이념대립은 아무짝에서 쓸모없는 짓이며, 허깨비에 불과하다.


 역장이 아버지의 목소리를 낸다. 시를 읊는다. (독고준의 일기다.) 석방되는 독고준.


"그러나 그는 연이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꾸 부끄러웠다. 부끄럽다는 것이 화가 나는데도 아랑곳없이, 그는 자기 자신이 이마에 모닥불을 이고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무엇이 부끄럽단 말인가. 이 세상의 악을 내가 만들어냈단 말인가. 그는 이 부끄러움의 감정이 그의 동물로서의 활기에 매우 위험한 독이라고 느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모두 허물어지고 만다. 나는 거기서 멀리 전진하지 않았는가." 350

"(...) 등을 든 사람은 그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면서 집에 가만있지 못하고 왜 이러구 다니느냐고 한다. 독고준은 잠차고 있었다. 탈 없이 사는 대로 살지 왜 허둥대느냐고 한다. 당하면 당하는 것이고, 혼자 당하는 것도 아니요 세상 사람이 다 당하면서도 소리 없이 울면서 한 세상 사는데 왜 너만 이리 요란스러우냐고 한다. 그래도 독고준은 가만있었다. 이미 되도록 다 돼 있고 알 때가 되면 여럿 모인 중에서 서로 무릎을 맞대고 쭈그리고 앉아서 옛날 얘기 삼아 자초지종 들을 날도 있다는데 왜 나대쌓느냐고 한다. (...) 역장은 느닷없이 에이 여보쇼 젊은 사람이, 밑도 끝도 없이 이런 소리를 하면서 또 좀더 선심 쓰시라는 건데, 할 수 있소? 그럼 딴 데 가 보슈, 하면서 독고준의 등을 탁 치면서 어서 가라고 한다. 그는 걸음을 떼놓았다. 맞은편에 방문이 나선다. 그러자 엔진 소리가 와르렁우르릉, 하고 가볍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 여름이다, 하고 독고준은 생각하였다. 인제야 그 여름에 도착했구나 하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 소리는 문 저편에서, 그 문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열었다." 351-3


다시 현실로, 이유정과 독고준. "이유정은 자기가 들어간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는 온몸이 모닥불이 된 것처럼 부끄러웠다. 나는 왜 그 방에서, 문간에 얼어붙은 것처럼 섰다가 그대로 물러나왔는가?" 353



"『회색인』은 독고준이 이유정의 방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그런데 『서유기』의 첫 부분은 이유정의 방에 들어갔던 독고준이 바로 그 방에서 나오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으며, 또 마지막 부분은 그가 자기 방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서유기』는 독고준이 이유정의 방에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사이, 즉 복도를 걸어서 위층에 있는 방으로 가는 사이의 짤막한 시간 동안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상념을 펼쳐주고 있는 것이다." 

송재영, 분단 시대의 문학적 방법,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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