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ation of Intimacy - Sexuality, Love and Eroticism in Modern Societies by Anthony Giddens




1장_일상적 실험, 관계, 섹슈얼리티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기든스의 논의는 섹슈얼리티를 서구 사회에서의 '현대성(modernity)'의 전개와 공/사(public/private) 영역분리라는 구조적 변동과 연관시켜 분석하는 것이 된다." 14

조형적 섹슈얼리티는 "재생산의 필요로부터 해방된" 것이며 이러한 해방은 '여성의 성적 쾌락'을 보다 중요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적인 영역, 즉 친밀성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구조변동은 섹슈얼리티, 더 나아가 현대사회를 새로운 모습으로 이끌고 있다.

러빈은 40대 이상인 사람들과 젊은 10대를 비교한 결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뚜렷한 시대적 차이를 발견한다. 40대 이상의 남자들은 '자신들은 외도해도 괜찮지만 자신들의 아내나 애인은 그러면 안 된다'는 이중기준을 (젊은 층에 비해) 강하게 부여한다. 또한 여성의 경우 혼전순결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고 자랑스럽게 여겼고, 남성의 경우 더 많은 여성과의 잠자리 경험이 일종의 훈장으로 여겼다. 그러나 10대 여성들은 더이상 자신들의 '미래의 중요한 배우자'를 위해 현재의 성적 쾌락을 억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젊은 여성들은 자신들도 성적 쾌락을 즐길 권리가 있음을 남성과 동등하게 느낀다. 남성들은 평등을 외치면서도 여성들의 이러한 성적 '권리'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이다[각주:1]. 킨제이 보고서는 동성애를 함께 다룬다. 킨제이는 동성애를 언급하며 섹슈얼리티가 '자유부동하는 것free-floating'이 되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동성애자들의 커밍아웃은 점차 보편화 되어가고 있으며, 동성애를 경험해 봤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이 책에서 기든스는 "'섹슈얼리티가 어떻게 생겨나는가, 섹슈얼리티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이 개인이 '소유하는' 것이 되었는가를 밝혀내는 작업'에 관심을 둔다. 그는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서 성의 역사를 말했던 푸코의 사상을 검토한다. 그는 푸코의 주장들이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생각은 푸코와 다름을 밝히고 있다.


2장_푸코와 섹슈얼리티

  억압가설은 문명은 규율(기율discipline)을 의미하고 규율은 내적 충동을 통제해야 하는데, 통제는 내재적일 때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현대성-초자아). 푸코는 억압가설을 비판하는데, 규율에 순종적인 것과 권력 자체에 순종적인 것은 다르며 규율에 따르는 것이 항상 자신의 내적 충동, 즉 섹슈얼리티를 억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섹슈얼리티라는 용어는 19세기에 처음 등장했는데 이 당시에는 여성의 성적 쾌락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등의 억압이 계속되어 왔다. 그러나 부르주아 집단에서 주로 행해진 '낭만적 사랑'과 그 개념은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고 남편과 아내가 "공동의 정서적 사업emotional enterprise의 동반자로 인식되었다."(61) 또한 가족 규모가 축소되어 여성의 생산적 역할이 축소되었고 조형적 섹슈얼리티의 탄생과 성차 중립적으로 진행되는 성 혁명sexual revolution, 자유주의 진영의 사회운동 등은 섹슈얼리티의 해방에 기여하고 있다. 푸코는 담론이 사회의 실재를 구성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권력-지식'은 푸코의 말처럼 일방적으로 사회조직으로 퍼져나가지 않으며, 사회와 상호작용하면서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제도적 성찰성institutional reflexivity이다. 지리적 이동성의 증대, 대중매체의 발달은 사회와 권력-지식의 상호작용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도착의 쇠퇴 현상은 이런 사회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예다. 프로이트는 도착이 모든 사람들이 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이며, 그렇기 때문에 도착이라는 용어는 비난하는 말로 쓰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3장_낭만적 사랑 그리고 다른 애착들

  사랑은 하나의 '열정'이다(브로니슬라프 말리놉스키). '열정'이라는 단어가 종교적인 열정이 아니라 세속적인 맥락에서 사용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열정적 사랑amour passion, passionate love[각주:2]은 낭만적 사랑과는 구별된다. 낭만적 사랑은 개인의 삶에 어떤 서사 관념을 도입하여 숭고한 사랑의 성찰성을 확장하고 자유와 자아실현을 결합시킨다. 그러나 열정적 사랑은 일상과 의무로부터의 해방이 더욱 부각되는, 성적이고 에로틱한 충동에 더 가깝다. 낭만적 사랑은 18세기 후반부터 생겨난 몇몇 사실들-가정의 창조, 부모자식 관계의 변화, 모성의 발명invention of motherhood-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부장적 권위로부터 모성적 애정에로 가족의 중심이 옮겨간 것이다. (...) 낭만적 사랑은 본질적으로 여성화된 사랑이다."(82-3) 남성들은 낭만적 사랑으로부터 채울 수 없는 열정적 사랑의 요소들을 정부나 매춘부의 섹슈얼리티로 해소하였다. 여성들은 자신들을 향한 이중기준으로 인해 이런 종류의 관계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친밀성의 영역'을 발전시킨다. 

"요약해보면 이렇다. 낭만적 사랑은 열정적 사랑으로부터 나온 것이고 그 흔적이 남아 있지만, 그것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다른 것이다. 낭만적 사랑은 곳에 따라 18세기 후반부터 최근까지 포괄적인 사회적 힘으로 존재해 왔지만, 열정적 사랑은 결코 그런 적이 없다. 낭만적 사랑이라는 관념의 확산은 결혼 뿐 아니라 개인적 삶의 다른 맥락들에도 영향을 준 기념비적 이행들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낭만적 사랑은 어느 정도의 자기-심문을 가정한다. 나는 타자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 타자는 나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가? 우리의 느낌들은 장기적 관여를 지탱해 줄 만큼 충분히 '깊은가'? (...) 낭만적 사랑은 이미 그 최초의 기원에서부터 친밀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은 욕정이나 노골적인 섹슈얼리티와는 양립불가능하다. (...) 낭만적 사랑에 빠진 개인에게 그 사랑의 대상인 타자는, 단지 그가 딴 사람 아닌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결여를 메꾸어 줄 수 있는 그런 존재이다. (...)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낭만적 사랑은 불완전한 개인을 완전한 전체로 만들어주는 어떤 것이다."(85-6)


4장_사랑, 헌신 그리고 순수한 관계

  80년대 후반 섀런 톰슨이 미국 십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소년들은 섹스에 대한 서사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소녀들보다 한참 뒤처친 것으로 나타났다. 소녀들은 그들의 자아의 서사narratives of self를 만들어내느 데에 능숙하다. 이런 이야기를 다른 십대들과 많이 나눠보았기 때문이며, 그 과정에서 추구의 로맨스The quest-romance가 형성되어 낭만적 사랑으로서의 섹슈얼리티를 만들어진다.  "많은 소녀들이 십대 후기에 이르기 전에 이미 불행한 연애사건을 경험하며, 로맨스가 더이상 영원이라는 말과 같지 않음을 잘 알게 된다. 그들은 자기들이 접하게 된 고도로 성찰적인 사회에서, 그리고 텔레비젼 시청과 독서를 통해, 여성의 지위에 영향을 주는 섹스에 관한 수 많은 토론과 관계와 영향력을 능동적으로 찾아 나선다. 이 소녀들은 자기 삶의 실제적 통제권을 얻기 위해서 낭만적 사랑 복합체의 파편적 요소들을 붙잡고 싸우고 있지만, 이제 그것들은 더 이상 전적으로 결혼과 연결되지는 않는다."(96) 톰슨의 연구에서, 소녀들은 자신들의 삶 대부분을 일을 하며 보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일을 자신의 미래를 위한 중요 원천으로 알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로맨스를 꿈꾸고 있었다. 핸콕의 연구에서 여성들은 가정적 삶domesticity로부터 도망쳤던 여성들은 여성성femininity을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과정은 긴장으로 가득찬 것일 수밖에 없었다."(101) 스스로 독립적인 삶을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집을 떠났으나, 낭만적 사랑 역시 함께 꿈꾸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사랑할 사람을 발견하고 나서는 자신들의 독립적인 삶을 놓게 되는 것이다.

  관계relationship라는 용어도 비교적 최근에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다른 사람과의 가깝고도 지속적인 감정적 유대"를 뜻한다. 과거에는 결혼을 통해서만 접근 가능했던(그래야 한다고 여겨졌던) 섹슈얼리티가, 이제는 사회적 관계 그 자체가 목적인 '순수한 관계pure relationship'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이 역시 조형적 섹슈얼리티의 발전에 기여한다. 

  남성들의 경우, "남성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행에서 지각생이다─어떤 의미에서 18세기 후반부터 쭉 그래 왔다. 적어도 서구 문화에서는 오늘날이야말로 남자들 스스로가 자신이 남자가 되어야 하며 될 수밖에 없음(to be men)을 깨닫는 첫번째 시기이다. 즉 남성들은 오늘날에 와서야 처음으로 어떤 모종의 '남성성masculinity'를 소유하고 있는 존재로서이 자신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105) 남자들 역시 지난 두 세기를 거치며 낭만적 사랑 개념에 영향을 받았지만, '낭만주의자'라는 표현이 남자들에게 쓰일 때는 여성에게 굴복한, 여성의 노예 상태임을 부각하며 부정적으로 쓰였다. 남성들은 여성들이 발전시킨 '친밀성의 영역'에서 자신들을 배제시켜 왔고 "남자들은 오직 유혹 또는 정복의 테크닉이라는 방면에서만 '사랑의 전문가'가 되는 경향이 있어 왔다." 즉 여성과의 사랑이 쟁취해내야 할 대상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남자들이 원하는 것은 "남성 연대성의 의례들과 결합되어 있으며 물질적 보상이 부여하는, 남자들 가운데서의 지위를 원한다. (...) 남자들은 일에서 자기정체성을 찾으려 할 뿐, 자아의 성찰적 기획은 미래를 향해 정연한 서사를 투사하기 위해 반드시 과거의 감정적 재구성을 포함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107)

  낭만적 사랑의 이상은 최근 들어 파편화되는 경향이 있다. 낭만적 사랑이나 열정적 사랑이 추구하는 일체감은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투사적 동일시는 파트너들이 서로 연결되게끔 만들어주지만 (결국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계속 나아갈 수 있게 해주지는 않는다. 이것은 친밀성에 의존해서 발전하는 '합류적 사랑confluent love'을 통해 가능해진다. 이는 서로의 정체성이 달랐음을 인정하되 앞으로는 두 사람이 가는 길을 합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합류적 사랑은 결국 나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어떤 한 사람을 전제하지 않고 서로 노력하며 나아가는 현재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특별한 사람'이 아닌 '특별한 관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하나뿐이며 유일한 파트너의 관념을 약화시켜 '별거하고 이혼하는 사회'로의 전환에 일조하였다. 낭만적 사랑은 관능의 기술을 포함하지 않고 환상적 로맨스로 이를 보완하지만, 합류적 사랑은 관능의 기술을 결혼 관계의 핵심에 도입한다. 성적인 테크닉은 결혼 생활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합류적 사랑은 낭만적 사랑이 은연 중에 추구하는 이성애로의 제한을 넘어선다. 합류적 사랑이 반드시 양성적이며 개방적인 것은 아니지만 낭만적 사랑보다는 친-동성애적이다.


5장_사랑, 섹스 그리고 다른 중독들


  




  1.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들이 누려 왔던(?) 권리를 놓아야 되는 입장이니까. [본문으로]
  2. 아모르 빠씨옹amour passion과 열정적 사랑passionate love은 서로 다른 용어인 것으로 보이지만 기든스는 이 둘을 같은 뜻으로 사용한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