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항상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 비교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이 말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면 왕따가 된다. 그렇다고 남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하면 바보가 된다. 우리는 이 사이에서 선을 잘 잡는 '속물'이 되어야 한다.


*한국에는 4개의 상처가 있다.

1. 식민지의 경험(노예, 非주인의 삶): 주체와 국민(주권)이 일치하지 않은 시대. '문학'은 주체이고자 하는 사람이 쓰는 것이다. 이 시기 텍스트에서는 죄 없는 책임, 죄와 죄의식의 불일치가 "과잉윤리"의 형태로 드러난다.(이광수..)

1910년에 주권을 뺏기기 이전에 1905년에는 외교권을 뺏겼고, 그보다 이전에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벌어진다. 이미 명성황후가, 한 나라의 퍼스트레이디가 자기 집안에서 무력하게, 개같이 죽은 이 시점에서 우리는 주권을 상실한 것이다.

2. 한국전쟁과 분단: 우리는 이것이 '대리전'이었음을 안다. 21년생 장용학은 "내 땅에서 내 피를 흘렸는데 내 땅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최인훈의 자기처벌 같은 것을 주목해서 보자.

3. 경제적 빈곤: 나라가 거지였다. 39년생 이청준(60학번)의 게 이야기. 소년 이청준은 하나의 주체가 아니라 혹이자 거지였다. 여기서 느끼는 모멸감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나. 가난 자체는 부끄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부끄러워 하는 그 순간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된다. 의식을 하는 순간 열등감은 내 몸을 꼼짝 못하게 한다. 모멸감에 복수하기 위해, "내 탓이오" 할 수밖에 없다. 햄릿은 우유부단한 게 아니다. 근대인이다. 딱 자신의 아버지가 당한 만큼 돌려줘야 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이 복수해야 하는 양을 저울질했기에 복수가 미뤄졌던 것이다. 근대 사회에서 진정한 복수는 불가능하다. 최고의 복수는 용서하는 것이다. 상대가 뉘우치지 않아도, 자각하지 못해도 용서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사회가 지녔던 세 번째 과잉윤리다. 자기 몫이 아닌 것을 자기가 떠안게 되는 데서 과잉윤리가 발생한다. 참회하는 자가 주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차원을 넘어서면 더이상 윤리적 과잉은 일어나지 않는다. 

4. 광주: 임철우의 <백년여권>에서, 그는 친구에게 손을 흔들고 나가지 못한 것을 끊임없이 뉘우친다. 보통사람이라면 납득할 수 있는 것이지만, 친구를 기만하지 않는 방식으로 기만한 것이 스스로에게 더 큰 상처를 안겨 준다. 여기에는 과잉이 없다. 진짜 내가 저지른 '외면'이라는 죄가 있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드디어 우리는 "시민의 윤리, 책임의 윤리"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기 자신과의 불일치를 극복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 90년대는 사춘기를 통과한 시대다. 이제는 적이 사라지고 있다. 적과 아군이 헷갈리기 시작하는 시대(3당야합과 김영삼, 노태우, 김대중의 구도), 민주화가 어느정도 됐다고 생각하고, 정치로부터 조금 떨어진 채로 살게 된 시대, 문화의 발전이 두드러진 시대(서태지). 그런 세대이다.


*우리가 살펴볼 수 있는 90년대의 3가지 차원

1. 자기자신과의 불일치: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것은 이 불일치의 간극을 메우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스스로' 뭔 짓을 하고,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지면 된다.

2. 모더니티의 차원: colonialism의 핵심은 근대성이다. 근대성은 그 자체로 자신을 식민화한다. 신경숙의 <외딴 방>, "진짜 죄의식"이 생겨나는 시대, '성공서사 자체에 대한 불공평함'. 

3. 두 차원의 죄의식: 프로이트는, "착한 애가 되어라"라는 말을 들은 아이가 착한 애가 되지 못하면 죄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애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죄의식이 생기기 이전에 이미, 초자아를 통해 그 말을 듣는 순간(호명되는 순간) 이미 죄의식이 생겨난다. '나는 제대로 된 애가 아니야'라는 죄의식과 그 시스템 자체를 받아들여버리게 된 자체에 대한 죄의식이 공존한다. 호명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신경숙의 작품에서 함께 보기로 하자. 성 정치학이 작동되기 시작한 것도 90년대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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