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은 이석호 옮김, 민음사, 1996


  본 저서의 목적은 ①포스트 콜로니얼 텍스트의 특성과 범주 규명, ②포스트 콜로니얼 텍스트를 설명하는 이론들 소개 및 정리이다. 저자는 포스트 콜로니얼한 문학(Post colonial literature)에 대해,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이란 단어가 콜로니얼리즘과 구별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식민지 시기 이후만을 다룬다고 생각하지만, "포스트 콜로니얼이라는 용어는 식민주의 시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국주의적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던 모든 문화를 포괄하는 통칭적 개념으로 사용된다[각주:1]"고 말한다. 여기에는 미국도 (영국과의 식민지 관계로부터 형성된 포스트콜로니얼 문학)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들 개별 문학들은 모두 제국주의 세력과의 긴장 관계를 통해서 그리고 제국주의 본국이 수행하는 동일화 논리와 차별화를 선언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주창한다. 바로 이 점이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의 특징이다.[각주:2]" 에드워드 사이드는 '파생Filiation을 가장한 의식적 제휴Affiliation'라는 말로 포스트 콜로니얼리즘 담론에서 문학의 역할을 설명한다. 주변부 문학이 중심부 문학을 아무리 거부하더라도 결국에는 그 체제의 중심으로 흡수되고 마는데, 이는 중심부로 편입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게 되는 주변적인 것이 '보편성'을 내세우며 수입된 문화로 함몰된다고 주장한다.

  포스트 콜로니얼한 문학의 최초 전수자는 보통 제국주의 세력의 편에 서 있거나 식민주의 권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지식인과 문학 엘리트들이었다. 이들의 텍스트들은 대개 피식민지에 대한 식민지 본국의 우월함을 내재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런 텍스트들이 객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텍스트들과 함께 "제국주의 담론의 조건을 은폐하는 기능으로 작용[각주:3]"하였다. 토착민들이나 망명자들이 제국주의의 도움을 통해 생산해낼 수 있었던 텍스트들 역시 포스트 콜로니얼한 문학 담론을 발전시켰다. 이런 초기 텍스트들은 강력한 식민지 본국의 강력한 권력과 통제 하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독자적인 발전을 이룰 수는 없었다.[각주:4] 하지만 이런 전초 단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새로운 공간의 특징을 설명해 낼 수 있는 표현이 부재하는 본국의 언어가 피식민지로 와서 새롭게 쓰이게 되는 전치Displacement 과정을 통해서만이, 본국의 언어가 피식민지라는 새로운 공간Place을 설명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포스트 콜로니얼 문학의 비평 모델로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1) 민족 모델과 지역 모델은 식민지 본국(유럽)과 비유럽이라는 전위 사이에서 문학 텍스트가 자신들의 민족성을 규명하는 수단으로써 기능한다는 모델이다. 이는 "한 나라의 문학을 그 나라의 정치, 사회사와 연루시켜 민족적 동질성이라는 중요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근원으로 다시 읽기 시작했다[각주:5]"는 점에 착안한다. 그러나 이 모델은 민족주의나 인종주의와 같은 정통적 본질주의 자체[각주:6]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오늘날에는 다소 논란이 있다. 2) 두 지역 이상의 비교 모델은 식민지의 다양한 유형에 따라 세분화된다. (유럽 본토로부터 떠나온) 이산 백인들로 구성된 식민지 연구, 이산 흑인들로 구성된 식민지 연구, 그리고 앞서 제시된 이 두 식민지 지역 간의 비교 연구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민족주의적 전통을 포기할 수 없었다.[각주:7]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포스트콜로니얼리즘 담론은 비교의 모델을 확장시키기 시작한다. 그 노력의 하나로 "제3세계 문학third world literature"이나 "식민 문학colonial literature"이라는 용어가 탄생하였다. 저자는 그러나 각 용어마다 한계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포스트 콜로니얼 문학post colonial literature"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절할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이 용어는 "아프리카나 인도의 콘텍스트 내에서 포스트 콜로니얼한 영어로 쓰인 저작뿐만 아니라 원주민 언어로 쓰인 저작 그리고 심지어는 기타 이산 언어로 쓰인 저작들을 통해 드러난 식민주의의 영향에 관한 연구를 가능케[각주:8]"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영문학의 주류 담론으로서의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을 다루는 책이기 떄문에, 중반부부터는 제3세계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참고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추후 보충할 것. (포스트 콜로니얼한 지역의 주택 혹은 건물의 축조나 붕괴가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의 문제점을 환기시키는 작품들 리스트는 51면을 참고할 것.


  5장에서는 '포스트 콜로니얼한 작품과 포스트 콜로니얼한 문학이론'은 포스트 모더니즘, 후기 구조주의, 페미니즘 비평 등 다양한 비평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 아프리카 쟁탈전Scramble for Africa이 벌어지던 시기에 유럽으로 유입된 아프리카의 '원시' 문화나 그러한 예술 형식은 유럽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예술적 취향과 기능에 대한 보편주의적 주장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각주:9]" 그와 동시에 아프리카로부터 온 전리품들은 인간의 '이면'과 보다 본능적인 것, 교양에 반하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만들었으며 "<원시적인 것> 속에는 타자, 즉 <거친 야수성>의 진실하고 항구적인 얼굴이 있으며, 그 야수성이 나타나면 유럽의 고도한 문명이 전복될 수 있다는[각주:10]" 생각까지 하게끔 만들었다. "아프리카의 <발견>이라는 것이 이성의 빛으로부터 어둠의 속으로 향해 가는 <유럽>의 여행이 지닌 자가당착과, 자기 의심과, 자기 해체, 그 와중에 있는 이십세기 유럽의 자기 모색을 위한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제공한다는 사실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더니즘이 끌어들인 20세기 문화의 자기 비판적이면서 무정부주의적인 모델이 지닌 가장 극단적인 형식도 그것의 형성 조건을 제공한 포스트 콜로니얼한 타자의 존재에 의존하고 있음을 목격하기는 어렵지 않다."[각주:11]

  이러한 배경에서, 미국에서는 '신비평'이 탄생한다[각주:12]. 그러나 신비평이 영국 본토의 전통으로 동화되기 시작하면서 포스트 콜로니얼한 작가의 작품들이 '주변부 작품'으로서 가지는 의미는 연구되지 못했고, 미국만의 독자적인 이론과 전통을 수립하려던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최근에 와서야 미국 내부에서 스스로를 '영국 본토'의 사회와 구별지으려고 노력하며 자신들이 지닌 포스트 콜로니얼리티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포스트 콜로니얼한 사회의 지식인들은 과거 그들의 식민 종주국이 그들에게 부여한 정체성이나 혹은 국제적인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항하여 그들 스스로가 자신을 규정해야 한다는 갈급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다.[각주:13]" 포스트 콜로니얼리티와 동시대 유럽 이론 역시 상호 연관적인데, 리오타르의 경우 과학과 대립적인 지식으로서의 내러티브를 강조하며 "<습관적 지식>에 대한 동시대 과학의 <경쟁> 개념이 지닌 특권 및 과학과 지식의 관계, 그 의미를 추출"한다. 결론적으로 "내러티브가 지배하는 구비 문화 전통의 사회에서 지식이란 것은 실질적인 사회적 관계의 산물로서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지 기타 다른 범주를 초월해 존재하는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범주(예를 들어 서구의 과학 범주는 윤리학과 정치학의 범주로부터 독립되어 있다)로서 평가되고 물화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 도출된다. "과학은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내러티브적 진술과 적대적이다. 그리고 과학이야말로 <서양>과 <진실을 결정하는 서양의 권리>를 정당화하는 가장 원초적인 수단이라고, 리오타르는 주장한다.[각주:14]"

"두 개의 지리적 실체로서 서양과 동양은, 사이드의 개념에 따르면, <서로 상보적이며 어느 정도는 서로를 반영한다>. 따라서 거의 모든 포스트 콜로니얼한 국가들은 본질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차이를 통해서 자신들이 정체성을 모색해 나간다. (...) 푸코와 사이드의 시각으로 보면, 포스트 콜로니얼한 담론은 언어, 권력, 진실 그리고 이 세 가지의 상호 관련성에 대한 특정한 양식의 사유체계를 환기해 내는 그 무엇이다. 진리란 특정 담론의 법칙 체계 하에서 진실한 것으로 인정된 그 무엇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진실을 합병하고, 규정하고, 증명하는 것은 권력이다. 진실은 결코 권력 외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즉 권력을 찬탈당한 진리란 없다. 왜냐하면 진리 생산은 권력의 기능이기 때문이다. <진리 생산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푸코는 말한다. 그러므로 포스트 콜로니얼한 담론은 권력 투쟁에 기초해 있다.[각주:15]" 이에 따르면, 포스트 콜로니얼한 사회에서 <진리>는 그 사회의 토착민들에게는 억압적이고 불합리나 침묵을 강요당하게 만드는 그 무엇이다. 사르트르가 말한 자아와 타자의 상호관계성[각주:16]이 성립하지 않는다. 포스트 콜로니얼 사회에서 주체와 타자의 관계는 위계적이다. (이 뒤로 다른 비평가들의 비평이 정리되어 있으므로 참고할 것)


  이 책의 한국어판에는 실려 있지 않은 6장(Re-thinking the Post-colonial)은 2002년 개정판에 추가되었는데, 21세기의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제국주의 문화 분석은 여전히 필수 요소로 남아 있으며 스피박이나 호미 바바의 이론 역시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다양한 관심사와 접근법이 생겨났는데, 대개는 보다 지역적인 연구들이다. 또한 '포스트 콜로니얼'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분야에서 다른 방식으로 소비되면서 그 기원과 역사에 대한 관점을 잃어 가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 말하는 '포스트 콜로니얼'은 "all the culture affected by the imperial process from the moment of colonization to the present day"라고 다시금 명확히 밝히고 있다. 

"Others, with equal passion, have argued that no society can ever be entirely free of such effects and that contemporary forces such as globalization are the the evidence of the continuing control of the "West" over the "Rest"." (194)

또한 현재까지의 역사로 미루어보아, 여전히 포스트 콜로니얼리즘은 식민지들이 그들의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란 불가능하다. 

  1. p.12 [본문으로]
  2. p.13 [본문으로]
  3. p.17 [본문으로]
  4. 포스트 콜로니얼한 글쓰기와 페미니즘적 글쓰기가 유사한 배경에 기초한다는 것을 고민해볼 것.또한 한 언어가 '본국 영어', '(다른 억양과 표현 등을 지닌) 식민지 영어[변두리 언어]'처럼 서로 다른 언어공동체에서 어떻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는지도 주목해볼 만한 점이다. [본문으로]
  5. p.33 [본문으로]
  6. 물론 그런 이론들은 식민지 본국과 피식민지 사이의 변별성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폐기해야 하는 이론이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주의하며 살펴보아야 함. [본문으로]
  7. "It required the aggression of nationalist traditions to break this pattern of inevitable reference to Britain as a standard and to provide space for the consideration of the literary and cultural patterns the colonies shared." 원문 p.18 [본문으로]
  8. p.45 [본문으로]
  9. p.256 [본문으로]
  10. p.257 [본문으로]
  11. pp.259-60 [본문으로]
  12. 미국은 역사적 전통이 없는 나라였기 때문에, 문학에 대한 기존의 <범주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신비평은 <개별 작품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방법론을 채택하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신비평의 기원 역시 포스트 콜로니얼한 것이다. [본문으로]
  13. p.265 [본문으로]
  14. p.268 [본문으로]
  15. pp.270-1 [본문으로]
  16. "타자를 위해 나의 즉자를 드러냄으로서, 나는 그 타자의 대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p.278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