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1년 초, 남태평양 일대에서 두 나라가 전쟁 중이다. 이 지역에는 아니크(차이나), 애로크(코리아), 나파유(재팬)라는 세 나라가 모여 산다. 팍스 아니카[각주:1]를 유지하던 아니크는 나파유에게 국토 절반 이상을 뺏겼고 애로크는 나파유의 식민지가 되었다. 나파유는 아키레마(아메리카)와 전쟁 중인데, "유럽인의 오랜 번영과 기술의 계승자인" 아키레마가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나파유가 점령했던 태평양의 반도와 섬들을 뺏어내고 있다.


전쟁

  로파그니스(싱가포르)의 나파유군 사령부의 오토메나크 중위는 이곳에 있는 포로수용소의 하급 관리장교이자 식민지 애로크 출신이라 사령부의 직접 소환을 받을 일이 없어 보이나, 어쩐 일인지 사령부에 출두하라는 연락이 왔다. 

"오토메나크 중위는 문손잡이를 끌어당긴 하얀 손목이 사라진 부분을 노려보았다. 식민지 출신의 자격지심을 늘 지나칠 만큼의 군인 정신으로 방어해온 오토메나크는, 이런 곳이 아니었다면 결코 그런 버르장머리를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 식민지 출신인 그의 마음 한구석에 늘 도사리고 있는 자격지심이 야전에서보다 한결 심하게 느껴졌다." 11

그의 아버지는 친 나파유파의 우두머리다. "그는 사관학교 출신보다 더 사관학교 출신다운 식민지 출신 장교가 어느새 되어 있었다. 기묘하게도 상관인 나파유인들조차도 그를 어려워하는 것이었따. 오토메나크가 대학에서 전공한 나파유 고전 문학의 지식이 크게 쓸모가 생겼다. (...) 나파유 정신의 뛰어남을 논리적으로가 아니라 시적으로 노래한 글들을, 오토메나크는 깊이 들이마셨다. 그 '정신'만 익히면 그는 나파유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오토메나크는 거듭났다. 나파유 정신이란 이름의 신화의 힘으로." 14-5

"사람이란 개인을 미워할 수 있듯이 민족도 미워할 수 있다. 그리고 남을 미워할 수 있듯이 자기도 미워할 수 있다. 자기가 피를 받은 민족이 광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화가 난 청년은 자기 민족을 미워했다. 그는 부끄러운 피를 스스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나파유 정신'을 자기 피로 선택함으로써 그는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지금 나파유 정신이란 다름 아닌 '전쟁 정신'이었다." 15

장군이 식사 시간 전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여 남은 시간에 자신도 장교 식당에서 식사를 하러 내려간다. 가는 길에 후보생 시절을 함께했던 다라하 중위를 만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오토메나크가 보기에 다라하는 본국에 충성스러운 군인은 아니었다. 오토메나크는 전쟁에서 나파유가 불리한 부분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다라하를 보며 기분이 나빠진다.


명령

  점심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장군을 만나는 오토메나크. "중대한 임무"를 지시받는다. 현재 아이세노딘(인도네시아) 군도에는 두 개로 나뉜 독립 운동 집단 중, 니브리타에 협력하면서 나파유에게는 적대적인 집단이 아이세노딘 동부 지역으로 도망해 임시 정부를 세우고 있다. 그들의 수반인 카르노스는 다른 40명의 니브리타 여자 포로와 함께 나파유의 포로로 잡혀 있다. 이 포로들의 석방을 조건으로 동부 아이세노딘 독립 운동 집단이 니브리타와 나파유 전쟁에서 중립을 지키게끔을 거래해야 한다. 오토메나크는 5명의 아이세노딘 독립 운동자와 40명의 니브리타인 여성 포로를 인수하여 동부 아이세노딘으로 가서 거래를 성사시켜야 한다.

"적을 미워하지 않다니. 오토메나크 중위에게는 적이란, 유럽인을 뜻한다. 그의 고향인 애로크를 합병한 나파유를, 그는 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다. 애로크는 나파유의 식민지가 아니라 두 나라는 자유의사로 통합된 한 나라다, 라는 것이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였다. (...) 독립 운동자가 되지 못한 대부분의 애로크 사람들은─그중에서도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운 신세를 보지 않기 위한 이론을 만들어냈다. 애로크는 나파유의 식민지가 아니라 두 나라는 한 나라이며, 애로크 사람은 빨리 나아퓨 사람이 되는 것만이 진실로 애로크를 사랑하는 길이라는 괴상스런 이론이었다. 이 괴상한 이론이 적지 않은 애로크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자기를 잠재우는 이론이었다. 그리고 자기 속에 들어온 남의 그림자를 따르는 이론이었다." 34

오토메나크는 진실을 모르는, 나파유 정신을 내면화한 애로크 사람인 까닭에 옛 지배자인 니브리타와 협조하고 있는 동부 아이세노딘 정부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토메나크에게는 그러한 아이세노딘 사람이 아시아 사람들의 공동의 적에게 지조도 없이 굴복하는 반역자로 보였다." 35


시종무관

  아카나트 소령의 안내로 카르노스가 묵고 있는 저택에 살게 된 오토메나크.

""니브리타 사람들이 아이세노딘에 불행의 씨를 뿌렸다면, 그들은 이 씨앗에서 생긴 독초를 없애는 일에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이세노딘에 독립을 주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아이세노딘이 독립하고, 그들이 그것을 승인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독립을 주기를 원치 않았고, 아이세노딘은 스스로를 해방할 힘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 싸움을 나파유가 도와서 나쁠 리가 있겠습니까?"

"중위, 사람은 자기 힘으로 자기의 주인이 돼야 합니다."

"그러면 나파유가 아이세노딘을 도와서 니브리타와 싸워서는 안 된다는 말이 아닙니까?"

"나파유가 니브리타와 싸우는 것을 우리는 상관 않습니다. 아마 나파유 사람들이 니브리타인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서겠지요."" 56-7

감시병 아마다이, 운전병 토사이, 네쿠니(셰퍼드). 오토메나크는 조용한 이 죄수가 얌전해서 마음에 든다.


방문자

  본국에서 온 부친의 친구 미야카. 총독부 기관지인 반도신문의 주필로 일하다 같은 신문사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곧 나파유가 패망할 것이므로 도망하기 안전한 곳으로 가 있을 것을 권하는 미야카. 이에 분노하는 오토메나크. 그는 본국으로 돌아가고 나서 아이세노딘의 마지막 황제였던 이타오바 황제를 추대하여 제국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기사를 쓴다. 카르노스와 세이나브 수상의 회견도 이루어진다. "나라를 망친 자기 나라 왕에 대한 원한이, 자기들을 망친 다른 나라 왕에 대한 충성으로 변한 사람들─그 속에 자기가 있음을 오토메나크는 이 순간에 직감했다." 96 미야카가 들은 말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진 오토메나크.


해협의 밀사

  아만다와 물건을 사러 차를 같이 타고 나가는 오토메나크. "아만다는 똑바로 쳐다보면서 대답을 기다린다." 104 "아만다에게서 받는 느낌은 처음부터 인상에 남는 일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똑바로 쳐다본다. (...) 그 눈의 표정 속에 오토메나크는 어떤 이해의 빛을 느낀 적이 없고, 짙은 갈색의 눈동자가 늘 인형의 눈처럼 보였다. 인형의 눈이 똑바로 사람을 쳐다보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105 아만다를 집에 내려놓고 사령부로 가자 자신이 고노란으로 출장을 가게 됐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타오바 황제를 만나 카르노스와 세이나브가 쓴 편지를 전달해야 한다. 황제가 나오는 것을 만류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밤 오토메나크는 우연히 가면이 걸린 벽 뒤의 숨겨진 공간을 발견한다. 그 공간에는 니브리타가 아이세노딘을 점령하는 동안 어떻게 독립 운동가들을 조종했고 자금을 댔는지 등등 중요한 정보들과 함께 무기, 보석류가 숨겨져 있었다. 그런 자료들을 보며 오토메나크는 깨닫는다. "오토메나크가 태평스럽게 지내온 스물여섯 해의 안쪽에, 전혀 다른 역사가 또 하나 있었다는 것이 된다. 처음부터 나파유와 애로크의 통합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나라의 안팎에서, 눈에 안 보이는 곳에서 이 문서에 있는 아이세노딘 지사들처럼 줄기차게 반대활동을 해온 역사다. 그렇다. 애로크에는 나의 부친이나, 마야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카르노스 같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오, 에로크 민족의 카르노스. 그는 누군가. 어디 있는가. 오토메나크는 들어본 일이 없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느낀다." 124

아만다의 외출을 따라나선 날, 아만다에게 보석 하나를 선물로 사주려는 오토메나크. 그들이 출발하려다 차에서 다시 내려 보석상으로 들어가 보석을 고를 때 그들의 차에 설치된 폭탄이 터진다. 다행히 이들에게 인명피해는 없었다. 하루이틀 뒤 고노란으로 떠나는 오토메나크. 

"장비도 허술하고 전투에도 익숙지 못한 아니크 군대를 경멸하였다. 그는 아니크를 정복한 나파유 군인의 눈으로 그 땅과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는 달리 되새겨진다. 니브리타를 비롯한 숱한 유럽 사람들이 어쩌다 앞질러 만들어낸 무기를 가지고 쑤시고 저며내고 했는데도 끝내 삼키지 못하고 만 아니크. (...) 아니크의 그 커다란 덩치는, 유럽의 폭력에 대항해서 이길 수 있을 때까지, 아시아 사람들이 숨 돌리기 위해, 몸을 뜯어먹히면서 막아선, 역사의 방파제가 아니었을까 하고. 세상은 그렇게도 볼 수 있었구나 싶으면서 그런 지각이 없었던 자신의 어제까지의 시간이 어둡고 긴 낭떠러지처럼 그를 어지럽게 했다." 140-1

고노란에서 키므라트 소령을 만나 이타오바 황제를 만난다. 편지를 보고 심기가 불편한 황제. 고노란 사령부 통제를 받지 않는 공작대가 독자적으로 황제를 끌어내어 왕정을 부흥시키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창밖을 내다보며 그의 말을 들으면서도 오토메나크는 왜 그런지 모든 일이 어느 먼 곳의 얘기처럼 공허하게 느껴졌다." 147


우기

  포로 수용소(수도원)에서 니브리타 여자 포로들을 보는 오토메나크와 아카나트 소령. 돌아오는 길에 차바퀴가 수렁에 박혀 한참을 고생한다. 차바퀴가 빠지는 순간, 시한폭탄을 떠올린 오토메나크.


아만다

  빗속에서 고생한 이튿날 몸살이 난 오토메나크. 아만다의 간병. 아만다와 잠자리를 가지게 된다. ***비밀 창고에서 아만다를 계속 바라보는 오토메나크. "여자의 모습이 사라지기가 무섭게 그녀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비밀 창고의 구멍으로 그녀를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 치밀었기 때문이었다." 182

"로파그니스라는 이 열대의 도시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꿈 같다는 느낌이다. 이 느낌은 불현듯 덮쳐들어서는 그에게서 온갖 균형을 뺏어버렸다. 이럴 때면 온갖 것이 이상스러워 보인다. 지붕 색깔이 왜 하필이면 누런 벽돌 빛깔인가. 야자나무의 저 줄기는 왜 저렇게 하얀가. 이런 따위가 자못 심각하게 의아스러워지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왜 오토메나크인가 하는 것이 제일 짜증 나는 의문이었다." 200-1

아만다와 두 번째 잠자리를 가지고 나서 복도를 걷가 아만다의 방을 보고 싶은 생각이 든 오토메나크.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만다의 방 앞에서 걸음이 멎었다. 잠깐 망설이다가 손잡이를 지그시 돌리면서 어깨를 곁들여 문을 밀었다. 갑자기 들여다보고 싶었다.

작은 등을 켠 방 안에 빈 침대가 유별나게 선명했다. 방이 비어 있다는 일이 무언 가 신비스러웠다. 또 한 사람의 아만다가 거기 있어야 하는 것이 옳기나 하듯이. 문을 닫고 자기 방 앞에 와서 한참 서 있었다. (...) 오토메나크는 모기장 안에 들어서서 침대 곁에 선 채 이러한 그녀를 바라보았다. 첫날에는 정신없이 그 시간이 흘러가버렸던 터라, 나중에 여자의 몸을 떠올리려 해도 되지 않았다. 지금 오토메나크는 문단속까지 다시 돌아본 여유 있는 마음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여자의 허우대가 금시 커 보이다가는 어찌 보면 팔이며 종아리 같은 데가 형편없이 가냘파 보이기도 하는 것이, 그녀가 누워 있으면서 둔갑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 204-5

"그는 여자의 턱을 받쳐들고 입술을 맞추었다. 아만다는 힘 있게 매달리면서 오토메나크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너무 가깝게 마주보기 때문에 여자의 눈은 광막한 공간으로 뚫린 구멍 같았다. 두 눈까풀과 속눈썹이 벌어진 카누 모양의 육체의 틈으로, 그 건너편에 있는 희미한, 잴 수 없이 아득한 세계를 오토메나크는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이상스럽게도 그 공간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오토메나크는 자기 눈길이 처음에, 다음에는 온몸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자기는 어느새 그 공간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는 그 공간이었다. 푸르고 희미한 막막한 어떤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오토메나크도 아만다도 없었따. 있는 것은 벌써 어떻다고도 할 수 없는 그 무엇이었다." 관계를 가지고, 결혼을 약속하는 둘.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 오토메나크는 다시 자기 자신을 찾는다. "남자가 먼저 바닷가에 밀려온 '자기'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워 들었다. 조개껍질만 한 그 조각들은 몹시 무거웠다. 힘겹게 주워모아 하나씩 '자기'를 이어 맞췄다. 눈을, 머리를, 팔을, 오토메나크라는 이름을, 애로크라는 고향을, 나파유 군인이라는 신분을, 로파그니스라는 지리를─그렇게 해서 그는 다시 오토메나크로 돌아왔다." 214

"전쟁이라는 태풍은 한쪽은 아이세노딘에서 아주 가까우면서 비껴 있거나, 다른 하나는 멀리서 휘몰아치고 있었다. 태풍이여, 지나가다오. 태풍이여, 멀리 거기서 주저앉아다오." 219-220


학살과 어둠과 사랑

  협상할 포로 명단을 확인하고 면담을 하기 위해 수도원에 도착한다. 오전 업무를 보고 시에스타에 휴식을 취하는데 총소리가 들려 황급히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니 학살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파유 군이 아니크계 아이세노딘 놈들이 이적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학살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휘 본부 천막으로 가니 여러 장교들이 있다. 다라하 중위를 여기서 다시 만난다. 나파유인처럼 살지 않으려 노력하는 나파유인인 다라하. 그 앞에서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던 오토메나크. "한 가게 앞에서 오토바이를 세웠다. 그는 길에 내려서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제 그 가게였다. 가게 안은 부서진 자리를 쓸어 모은 폐허와 같았따. 널려 있는 부스러기는 없었지만, 선반 위에는 부서진 물건들이 얹혀 있었다. 그런 탓으로 골동 가게같이 보였다. 가운데 문으로 얼굴 하나가 내밀더니, 나무탈처럼 굳어버렸다. (...) 나무탈은 움직이지 않았다. 오토메나크의 얼굴도 불시에 나무탈이 되었다. 오토메나크는 굳어진 제 얼굴을 가지고 웃어주려고 했으나 되지 않았다. 돌아서 나오다가 뒤를 돌아본 오토메나크는 쭈뼛해졌다. 눈을 부릅뜬 악귀의 탈이 노려보고 있었다. 오토메나크가 돌아보는 찰나에 탈은 비참하리만큼 당황스럽게 쭈그러진 늙은 탈로 돌아가려고 애를 썼다. 다시 고개를 돌려 걸어나오는 오토메나크의 망막에는 둔갑하려고 애쓰는 악귀의 탈이 남아 있었다." 278-9

"카르노스 씨의 마음속이 저 잠자리채같이 가볍지 않을 것은 알고 있는 일이다. 태풍이 부는 바다 같을 게다. 그러면서 겉으로 저렇게 태연하다는 것이 무서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만다는 저기 보이는 저대로의 아만다일 것이다. 오토메나크가 모르는 또 하나의 아만다가 그녀 속에 숨겨져 있으리라는 환상은 우스운 일이었다." 283 (어째서 아만다는 자신이 보는 그대로의 아만다일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인가?)


등화관제

  세이나브 수상은 모든 것을 나파유가 아닌 니브리타 탓으로 돌리는 연설을 한다. 맹방 게르마니아가 전쟁에서 지고 있다는 소식, 나파유 군은 적을 잘 격파 중이라는 소식을 듣는다. 오후에 아카나트 소령의 연락을 받고 그를 만나러 작전참모부로 간다. 거기서 다라하 중위와 마주친다. 일이 끝난 후 다시 만나기로 하고 아카나트를 만난다. 아니크계 처단에 항의해 자결한 토니크에 대해서, 스파이 손으로 암살당했다고 거짓 이야기를 꾸미려는 아카나트. 일련의 사건을 보며 자괴감을 느끼는 오토메나크. 며칠 뒤 카르노스와 아만다와 함께 국수를 먹다가 사령부에 불려갔다 와서는 아만다와 박물관 나들이를 나간다. 욕망에 휩싸여 걸으며 수시로 키스를 해대는 이 커플... 박물관을 거닐고 나오자 어떤 소년이 광주리에 담긴 꽃을 돈과 교환하고는 사라진다. 광주리 받기는 오늘의 임무였으며, 이 안에는 편지가 있을 것이다.


항해

  사흘 전 로파그니스를 빠져나온 바리마 호에 타고 있는 오토메나크. 배에는 여자 포로들과 카르노스가 함께 있다. 그 광주리 속의 편지 내용은 아카나트 소령으로부터 온 것으로, 합의가 성사되어 포로들의 송환을 준비하여 하루 이틀 내로 출발하라는 것.

"앞에 앉은 선장이 갑자기 꿈속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로파그니스에서도 가끔 일어나던 증세다. 나파유인 선장과 함께, 이런 데서 배를 타고 있는 자기라는 사람. 이런 일이 남의 일 같고, 그런 남의 일에 간섭하고 있는 자기 역시 신기한 어떤 남 같았다.

나쁜 증세였다." 371

포로들을 데리고 동부 아이세노딘으로 향하다 다시 로파그니스로 돌아오라는 무전을 받는다. 다시 뱃머리를 돌려 돌아가자 반란을 일으키는 니브리타 여자들. 그들을 무사히 진압했으나 태풍이 배쪽으로 향해 오고 있었다.


섬에서

  난파한 바리마 호. 상사와 자기만 덩그러니 모래사장에 남겨져 있다. 조금 쉬자며 잠들었다가 다른 모래펄 쪽으로 간다. 열 명을 발견한다. 탐사를 해보니 병목 같은 만이었고, 그 만 속에 바리마 호가 배 밑바닥이 갈라진 채로 처박혀 있다. 식당에서 통조림으로 배를 채우고, 정찰을 계속한다. 다른 모래펄에서 여자 열아홉 명을 찾아낸다. 다시 정글로 들어간다. 냇물을 발견한다. 강물을 따라 꼭대기에 오르자, 자신들이 있는 곳이 섬임을 깨닫는다. 

"이렇게 끝장인가. 어리석은. 아무것도 모르고 경거망동한 일생. 어떻게 할 수만 있다면 바로잡아보려고 한 일생.

그러나 이렇게 되고 말았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 속은 탓인 것 같았따. 나파유. 그렇다. 모든 것이 나파유 놈들이 애로크를 침략한 데서 비롯했다. 아직도 나라 밖에서 나파유를 반대해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할 수 있었는가.

말하자면 한 시대가 권력의 모두를 다해 취하게 한 환상 속에서 자기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 내가 못났다는 죄. 그것이다. 이 죄에서 그 모두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는가. 아무튼 책임을 묻는 사람들은 잔인할 것이다." 428 

429 "진실의 소리"라는 이름의 방송이 나온다. (총독의 소리..주석의 소리...) 나파유가 대패하고 있다는 내용. 일단 난파한 그들은 돌아가서 군법회의에 부쳐져 사형을 당하든 여기서 적에게 발견되어 죽든 죽임을 당할 것이다. 싸우고 죽는 게 나을 것이다.


죽음의 방주

  조난의 삶을 꾸려나가는 그들. "밤에 오토메나크는 무전실에 가서 '진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 그런데도 이상스러운 일은 그 모든 '진실'이 꿈 같기만 한 일이었다. 결코 의심하는 것이 아닌데도 그 방송의 모든 내용이 꿈속의 남의 일처럼 겉돌기만 하고 자기 목줄기에 들이닿는 '사실'로 느껴지지 않았다." 449-50


로파그니스─30년 후

  아이세노딘 주재 애로크 대사관 상무관 코드네주. 서른 살. 바냐킴(오토메나크)을 찾아온다. 예쁜 딸과 함께 살고 있다. 바냐킴에게 아이세노딘 명예 총영사직을 부탁하러 왔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사람은 남들이 뭐라고 보는가에 따라 어떤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488

명예 총영사직을 사양하는 바냐킴.

""나이는 먹었으나, 나는 건강합니다. 반드시 고달플 것이 두려워서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사실입니다. 물론 사람은 남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하겠지요. 이른바 세상이란 것에 대해서. 그러나 사람이 져야 할 책임은 남에 대해서만은 아니겠지요."

"……"

"자신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하겠지요. 제 마음에 대해서 말입니다. 제 마음에. 마음에 대해서. 사람은 그 마음이란 것을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요? 세상에서부터 가져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제 마음에. 제 마음에 대해서. 제 마음에 다짐을 두듯 바냐킴 씨는 또박또박 그 말에 힘을 주었다. 실은 제 '비밀'에 대해서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490

"당신은 아이세노딘 사람이 될 생각은 없습니까. 당신은 얼마 전까지 자기를 나파유 사람이라고 믿고 있지 않았습니까. 지금 당신은 자기를 애로크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아이세노딘 사람도 될 수 있습니다. 아니 니브리타 사람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연이 다한 이름을 버리면 됩니다. 사람은 육체로서는 한 번 나는 것이지만, 사람으로서는, 사회적 주체로서는 몇 번이고 거듭날 수 있습니다. 곧 당신은 당신이 아이세노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참가할 수 있습니다. (...) 당신은 거듭날 수 있습니다. 왜 죽으려 합니까. 당신은 마흔두 사람의 목숨을 살리면서, 자기도 또 한 번 살 수 있을 것이 아니오." 492


아이세노딘인이 된 오토메나크. 그는 애로크인이라는 것을 이제는 기억 속에 묻는다. 그러나 그 '비밀'은 여전히 그의 속에 있다. 태풍에 난파도니 당시, 카르노스는 다른 섬에 숨어있다가 오토메나크 일행에 합류했고, 시간을 보내면서 오토메나크는 메어리나와 관계를 진척시켜 결혼한다. 아만다는 비밀 가옥 시대 전부터 카르노스의 첩자이자 정부였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아이세노딘이 독립하고 퍼스트 레이디가 되는 아만다. 카르노스가 죽고 나서는 화교 선박업자와 재혼한다. 오토메나크는 메어리나에게서 다른 사랑을 찾는다. 


"바냐킴 씨는 아내의 손을 잡았다. 메어리나 부인은 무심코 맞잡고 서서 하늘을 쳐다보다가 문득 남편은 자기들이 보고 있는 쪽을 보고 있지 않음을 보았다. 남편은 자기, 메어리나의 옆얼굴을 보고 있었다. 옛날, 섬에서 자기를 품에 안을 때마다 보인 그 얼굴이었다. 나는 30년 동안이나 헛소문 때문에 쓸데없이 마음을 괴롭혔다. 그 얼굴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그토록, 거의 미친 듯하던 그 사랑이 다른 사람을 겨냥한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는. 그렇다. 괜한 것을 가지고 그 마음고생을 하다니, 그녀는 반생의 미망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지금 자기를 보고 있는 얼굴과, 그 섬의 낮과 밤의 풀섶 위에서, 하늘과 별을 바탕 삼아 올려다본 얼굴의 기억은 빈틈없이 같았기 때문에." 496


  1. 팍스 브리타니카: ‘영국에 의한 평화’ 여기서는 중국에 의한 평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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